새로운 17대 국회가 꾸려지고, 이에 따라 국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보건의료정책도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탈 수밖에 없게 됐다.
일단 민주노동당이 10개의 의석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원내 제3당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무상의료’라고 하는 다소 급진적인 정책이 역사상 최초로 제도권 내로 진입해 논의될 것이라는 전향적 변화를 예고한다.
물론 10석의 의석만으로 의료체계 전반을 뒤흔드는 정책을 바로 입법화 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무상의료 공약은 민주노동당이 창당 이래로 줄기차게 주장해온 내용이니 만큼 어떤 형태로든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되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민노당은 이번에 보건복지위에 최대 2명의 의원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어서 그 영향력은 지금으로서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그동안 원내 2당 내지는 3당으로서 정책을 힘있게 끌고가지 못했던 여당이 비로소 약속했던 참여정부 공약들을 밀어붙일 뒷심을 얻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그동안 의료계가 우려해 마지 않던 참여정부 보건의료발전계획과 참여복지5개년계획이 실제로 가시화될수 있는 충분한 추진력이 생겼다는 뜻이 된다.
이 안에 포함된 총액계약제, 의료인면허갱신, 공공의료확대 등의 진보적 의료정책들이 보다 강력히 힘을 받아 진행되면, 그만큼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민간보험도입과 본인부담금 인상 등 상당수의 의료정책에 있어서 의료계의 코드가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과 부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계가 대정부활동을 펼치는데 느끼는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그동안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시동을 걸었던 많은 보건의료정책과 건강보험정책이 지속성을 가지고 운영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보다 안정적인 정책운용이 용이해 지리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이번 총선에서 의사출신 국회의원 후보가 모두 야당에서 당선되고, 약사출신 후보가 모두 여당에서 당선됐다는 점도 양 직역간의 이념적이고 정책적인 차이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다분히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의사들과 상대적으로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근접했던 약사들이 총선에서도 역시 각각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양분됐다는 점은 향후에도 이같은 이념적이고 정책적인 차별 구도가 지속되리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총선결과를 둘러싼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해 볼 때 비록 의료계가 반대했던 몇몇 후보들이 낙선했다고 해도, 의료계가 계획하고 있던 의료정책의 개혁드라이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요소는 많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보건의료정책에서 의료계와 확실한 입장차를 드러내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의석만 합해도 전체 의석수의 53%를 차지한다는 점만으로도 의료계가 선택분업과 같은 굵직한 규모의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