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사람을 병원 응급실에 보내도록 하는 법안이 나와 말썽이다.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이 최근 발의한 '경찰직무집행법'은 술에 취해서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면 응급실에 데려가 치료를 받도록 하고 병원은 이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 다른 국회의원 11명도 서명했다고 한다. 야간에 술에 취한 채 지구대에서 말썽을 피우는 취객이 많아 치안 확보가 어렵고 경찰력 낭비가 심하다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생사가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술에 만취해 통제가 어려운 취객을 응급실에 몰아넣는다는 상식 이하의 발상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의료계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병원장들의 모임인 병원협회는 물론 관련 학회까지 나서 '사법권이 있는 경찰도 처리하지 못하는 취객을 의사들이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되묻는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경찰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호소도 한다.
정작 응급실을 이용해야 할 환자들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취객으로 인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금도 응급실은 취객들의 난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경찰이 보낸 취객까지 합세한다면 응급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다. 의사를 폭행하고 응급환자 진료를 방해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할 것이다. 취객의 인권침해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득될 게 없고 문제만 키울 법안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경찰력 낭비의 문제보다 응급환자의 생명권이 더 소중하다. 이 점이 간과되어서는 절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