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일반외과가 당연시 여겨졌던 당시 외과 전문의 3명이 대장항문 진료만 보는 외과의원을 냈다. 그것도 3명이 공동개원으로.
당시 외과계 선배 의료진들은 외과 진료를 모두 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대장항문 진료만 하겠다는 것에 대해 우려섞인 시각을 보냈다. 게다가 단독개원도 아닌 전문의 3명이 공동으로 개원할 경우 병원을 운영하기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개원한 대장항문외과는 99년도 '대항병원'으로 거듭났고 2008년에는 복지부 지정 대장항문 전문병원 시범기관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대항병원은 치질, 여성치질, 탈장, 대장암, 복강경수술, 대장내시경, 위내시경, 정맥류혈관, 소화기내과, 여성요실금, 요로결석, 전립선, 변비, 급성충수염 등 14개 진료를 클리닉센터화 함으로써 대장항문 진료의 전문성을 부각했다.
실제로 환자대기실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꽤 붐볐고 VIP실을 제외한 입원실 또한 거의 차있는 상태였다.
여기에는 대항병원의 숨은 의료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변하지 않은 성실함이 녹아 들어있다.
2008년 7월, 복강경 대장수술 1000례 돌파라는 기록을 달성했는가 하면 2007년 PACS(의료영상정보전달시스템)구축, 첨단 의료장비를 구축하고 1998년 복강경 수술 클리닉을 개설하는 등 끊임없는 자기개발이 있었다.
무엇보다 대항병원은 개원 19년이 된 지금까지 그 흔한 해외진출도 무리한 네트워크 확장도 없이 한 눈을 팔지 않고 현재 대항병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지난 19년간 확장한 네트워크는 본원을 포함해 4개에 불과하며 한때 중국 등 해외진출을 고려하긴 했지만 국내 의료기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장항문 전문병원으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 의료진의 학술적인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대항병원 의료진들은 1년에 1번 사례발표를, 3년에 1번은 학회에 논문을 발표해야 하며 이를 지키면 상금을 그렇지 않으면 패널티를 적용한다.
이같은 학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급기야 대장내시경에서 대장용종 점막하절제술을 통해 16cm의 용종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이 정도 크기의 용종은 대개 배를 열고 수술하지만 대항병원은 지금까지의 연구와 경험으로 내시경 과정에서 간단히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대항병원도 공동개원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개원 당시 3명의 원장으로 시작했지만 2005년도 이후 원장 2명만이 남아 공동개원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개원 이후 병원이 승승장구하자 내부에서 자산배분에 있어 입장에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던 것.
대항병원 이두한 대표원장은 "공동개원시 동업자와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대하듯 항상 조심스러워야한다"며 "특히 어려울 때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병원이 성장하면서 서로의 이익과 권리를 따지면서 갈등이 커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공동개원은 내가 1~2%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역시 의료기관은 사람을 대하는 일인만큼 내부 직원간에 원활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대항병원은 볼링, 테니스, 산악, DIY 연극영화관람, 스키, 요가 등 분야의 사내 동호회를 만들어 1인당 월 2만원의 활동비를 지원, 이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동호회에는 행정직원과 의료진 등 전직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직원들 간에도 안면을 틀 수있고 친해질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대항병원 식당의 점심시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대표원장은 "개원 당시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본 결과 진료의 전문화였다"며 "주변의 만류에도 우리가 끝까지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년간 대장항문 진료의 전문성을 유지해오고 있는 비결에 대해 왕도는 없으며 다만 성실성을 놓치 않는 것"이라고 했다. 즉, 상당수의 의료기관들이 성공의 문턱에서 포기하거나 중단하는데 계속해서 끝까지 성실함을 유지한다면 분명 그 댓가를 얻게될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