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대응책과 원격진료 찬성 등 경만호 의협 집행부의 잇따른 정책방향을 바라보는 개원가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시도의사회 회장들은 지난달 29일 신종플루 비상대책회의 후 경만호 회장과 가진 별도의 저녁자리에서 “정치권 중심의 의협 정책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회무방향에 우려감을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회장들은 청와대와 국회, 공단 등과 지속적인 만남을 보이는 경만호 회장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회원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의협의 행보에 답답함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경만호 회장의 정치력이 지닌 '양면성'이다.
경만호 회장은 5월초 회무 시작과 동시에 청와대에서 가진 ‘서비스산업 선진화 민관합동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으며 회장 후보시절 언급한 정치력이 과언이 아님을 입증하면서 국회 주요 거물급 위원들과 공단 이사장 방문,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 병문안 등 정치적 인맥강화에 주력해왔다.
이렇다보니 의협회장의 정치력으로 의료법과 수가협상 등 누적된 의료현안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높아졌으나, 다른 한편에선 의료계 내부의 집안 살림은 등한시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이다.
한 시도회장은 “경 회장이 너무 정치권에 밀착되어 있다. 큰 것부터 해결하려는 것 같아 걱정 된다”면서 “회원들의 요구사항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회원들, 의협회장과 대화하고 싶어한다"
다른 회장은 “회원들은 무리한 요구보다 의협회장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고 싶어한다”며 “중앙 정치권에 집중된 행보를 지양하고 회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지적은 의협의 무리한 정책추진이다.
일례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선진화의 시발점인 원격진료와 영리법인 등 정책현안이 회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협은 원격진료에 대해 의원급 중심 정책방향을 조건으로 찬성의 뜻을 공표했고, 영리법인도 여러 토론회에서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한 중견 개원의는 “원격진료의 밑그림도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찬성부터 하는 의협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화상진료에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여기에 부합할 수 없는 개원의들은 도태되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현 사회적 이슈인 신종플루의 대응방향과 전략도 ‘사후약방문’으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방의 한 시도회장은 “긴급기자회견과 비상대책회의, 성명서 발표 등 뜻은 좋으나 의료계만의 목소리지 사회적 공감대에는 부족했다”면서 “오히려 언론으로부터 의사들만 살려고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시각만 확대됐다”며 뒤쳐진 대응과 논리전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경 회장도 간선제 소송과 중복처방 패소 답답해했다"
한 개원의는 “경만호 회장이 MBC 100분 토론에서 보인 모습을 보고 답답했다”면서 “보건소 문제에 그칠게 아니라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복지부장관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했다”고 말했다.
10만 의사의 수장으로서 경 회장이 지닌 고민의 무게를 배려해 지속적인 신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저녁자리를 함께한 시도회장은 “경만호 회장도 업무파악은 충분히 마쳤으나 걸림돌이 있어 결단을 못 내리는 것 같았다”면서 “간선제 소송과 중복처방 패소, 의료단체 신설 움직임 등 일련의 상황에 대해 답답해했다”고 경 회장의 심정을 전했다.
경만호 회장의 동문선배이자 시도회장단 맏형인 박인태 전남의사회장도 “집행부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의 허니문 기간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의협 회장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치적 욕심보다 회원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뼈있는 조언을 덧붙였다.
후보시절부터 잘못된 의료 틀을 바꿀 것을 공언한 경만호 집행부는 취임 5개월 현재, “대과도, 성과도 없다”는 개원가의 냉정한 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