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은 수학과 같이 엄밀한 정답이 나오는 학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신종 플루 검사가 90%의 정확도를 가진다고 말할 때 그 확률은 주관적 확률일 뿐이라서 데이타의 범위에 따라 많은 오차가 생긴다. 결국 현대 의학은 통계를 통한 확률로 진단과 치료 ‘가능성’을 추정하게 된다.
기존에 알려진 질병에 관한 데이타는 많다. 이처럼 데이타가 많을수록 확률의 주관성이 점점 적어진다. 하지만 신종 플루와 같이 경험한 적 없는 질병의 경우 데이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통계의 주관성은 더욱 심해진다. 신종 플루의 사망률이나 타미플루의 내성, 진단키트의 정밀도 등은 심한 주관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신종 플루의 사망률은 충분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좀 더 객관성이 확보되며, 신종 플루에 대한 타미플루의 내성 정도는 충분한 타미 플루의 사용이 이루어진 후 좀 더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진단키트의 정밀도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제 사용한 후에야 비교적 객관적 확률이 확보되어진다.
이처럼 의학은 많은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잘못된 치료와 잘된 치료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신종 플루와 같은 알려지지 않는 질병들은 잘못된 판단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험을 가지고 있는 질병의 경우 더욱 더 질병치료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그들의 직접적 경험이 진단과 치료에 유연성을 부여하여 좀 더 나은 환자 치료를 하게 할 것이다. 의사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에게 질병과 관련된 진단과 치료권한을 많이 주는 것이 통제하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신종 플루가 시작되었을때 의사들에게 타미플루의 사용을 거의 허용할 수 없게 한 관료형(관리형) 통제의료체제로 인해 신종 플루가 의심되어도 사용할 수 없었다. 나중에 타미플루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주었지만 그 동안 복지부가 취한 관료적 태도를 보았을 때, 사용한 타미플루의 삭감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 때문에 사용을 망설이는 의사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와 같은 진료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관료형 의료체제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유연성이 떨어진다. 이미 알려진 질병은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료와 치료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억지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신종 플루와 같은 새로운 질병에 대한 복지부의 관료제 의료제도에서의 통제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경직성을 초래해서 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같은 강력한 통제형 국가에서 타미플루를 사용해야할 때는, 아무리 의학적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해도, 복지부 관료의 진단 지침과 치료지침을 기다려야하고 그 지침들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을 해야 보복부의 보복(삭감의 경우)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온힘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관료의 지침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하며 지침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데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질병 치료에 대한 경직성은 의학적 처치와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의학적 처치보다는 복지부의 지침과 지침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의 처벌이 더욱 무섭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신종 플루 대책에 혼란을 겪는 것은 경직된 관료적 통제형 의료제도 때문이다. 질병치료를 직접하고 있는 의사에게 질병치료에 대한 권한을 주어야하는데. 환자의 얼굴도 보지 않는 관료들이 질병 통제권을 쥐고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은 세계제일의 의료제도라는 자랑과는 달리 보이고 싶지 않는 후진적 의료제도의 모습이다.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환자별 차이까지 고려해야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복지부의 강력한 치료지침이 많아질수록 의사들은 그 지침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고 의료는 점점 경직되어 질 것이다. 그래서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듯이 복지부의 지침이 없으면 치료하지 못하고 환자의 고통보다는 복지부의 처벌을 더 두려워하는 이상한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료제도의 경직성을 해소하기위해 복지부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권한을 의사에게 넘기고 의료행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복지부가 모든 환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관료주의 의식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