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녹십자와 신종플루 백신 조달 계약을 맺으면서 면책특권을 인정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면책특권은 정부와 업체간 신종플루 백신 구매계약 걸림돌로 작용했었다. 이 때문에 조달청과 업체간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8일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은수 의원이 정부가 해외 백신 300만 도즈 도입 계약을 추진하면서 GSK에 면책특권을 주는 등 굴욕적인 구매의향서를 전달했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9일 강명순 의원실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녹십자와 신종인플루엔자 백신 586만도즈 조달 계약을 맺으면서 물품구매계약 특수조건 '제조물 책임 등' 조항에 면책특권을 명시했다.
계약서는 '녹십자 임직원들의 중대한 과실 또는 고의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생하였음이 입증되지 않는 한 백신의 결함과 관련하여 발생되거나 주장되는 모든 청구, 멸실, 책임, 손실, 손상, 손해, 경비 및 기타 비용(법률비용 및 기타 전문가에 대한 비용을 포함함)으로부터 녹십자와 그 임직원들을 면책하고 그로 인하여 어떠한 손해도 입지 않도록 한다'고 적시했다.
또한 '녹십자는 면책의무가 적용되는 청구 또는 소송을 제기하는 자 또는 손해를 입은 당사자와 소송 및 협상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정부는 그러한 청구 또는 소송 등이 조정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조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우리 정부가 GSK에 제시한 '구매의향서'의 면책 특권 조항과 비슷한 수위다. 박은수 의원이 제시한 '굴욕적 구매의향서 주요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백신 접종에 의한 사망이나 사건 등에 대해 GSK의 고의성이 확인될 경우가 아니면 GSK의 책임을 면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번 면책특권과 관련, 이미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녹십자와 계약을 추진 중인 GSK와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강명순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녹십자 쪽에 면책특권을 부여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업계에서도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은 그런 부분에 대해 1차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위험부담을 담보하고 있다"며 "협상이 굴욕적이다. 제약사가 악덕기업이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신종플루와 같은 질병 유행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미숙함을 탓하는 것이 우선일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박은수 의원실 관계자는 "어제 강명순 의원님의 질의를 듣고 녹십자에 대해서도 면책특권을 부여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GSK에 제시한 조건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서 "녹십자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범위에서 면책특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GSK에 대해서는 국가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이 들어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은수 의원은 8일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해외 백신 300만 도즈 확보 확정 발표는 허위 과장된 것이며, GSK와 교환한 구매의향서도 매우 굴욕적인 것이라며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GSK가 제시한 계약조건은 계약서는 국제 표준에 따른 것으로, 미국의 경우 백신공급자에 대한 과실보호 법적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고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처럼 공급자에 대한 책임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아예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