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약심부름 가는 것은 마실이라고 생각하죠. 지휘관 딸 옆에서 밤새 물수건을 갈아봐야 군의관 생활 좀 했다고 하죠"
한 대학병원 조교수와 술자리 중에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 군대 얘기만한 단골 안주(?)가 있던가.
비록 사병출신인 기자와 장교출신의 교수지만 술잔이 오가다보면 일정 부분의 과장은 애교로 넘어가며 군생활 얘기가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스갯소리가 과장은 아닌 듯 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군의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절반 이상이 지휘관들의 가족을 치료해 봤다고 털어놨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휘관의 애완견을 치료했다는 군의관도 상당수니 이러한 농담은 자조섞인 하소연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설문결과를 들여다보니 군의관의 역할이 참으로 모호해진다. 무려 60%에 달하는 군의관들이 부식검수나 수질검사에 동원됐고 70%이상이 상급자가 진료권을 간섭해 처방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사병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선발된 전문의가 수의사도 됐다가 영양사도 됐다가 나중에는 수질관리원으로까지 변화하고 있으니 군대라는 곳이 요지경이 아니던가.
그러나 의료계의 선배들은 이러한 후배 전문의들의 부당한 처우에 큰 관심이 없나보다. 매년 군의관들의 하소연이 터져 나오지만 의료계는 아무런 반응들이 없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대한전공의협의회 홀로 성명서를 내고 대책을 요구하며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니 말이다.
의료계는 늘 의사에 대한 인식개선을 시급한 화두로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대국민홍보에 나서고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는데 여념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휘관 애완견을 치료하러 다니는 전문의를 보고 사병들이 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접하게 된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문의가 애완견을 치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의 전문성이 홍보가 될지 의문이다. '군대가 다 그런거지'라는 말로 어물쩍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먼길을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