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지법이 지난해 4월26일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결의한 정관개정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소를 기각했다. 대의원총회는 이날 의사협회 회장을 간선제로 선출하기로 결의했다. 여기에 반발한 일부 회원들이 사단법인 대한의학회와 개원의협의회가 선출한 대의원이 무자격자이며, 당시 교체대의원을 참석한 대의원도 무자격자인 만큼 대의원회 결의는 의사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무효라며 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이들의 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의학회와 개원의협의회 선출 대의원들을 무자격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체대의원들도 적법한 자격을 갖춘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의사협회 회장 간선제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우리는 의협회장 선출 방식이 대의원들의 결의에 의해 간선제로 전환하는 것에 답답함과 우려감을 갖고 있다. 의약분업과 협회 민주화 투쟁의 산물로 도입된 직선제가 8년 만에 다시 간선제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역사의 후퇴'로 간주할 수 있다. 현행 직선제가 9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파벌과 동문 선거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간선제야말로 민의를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여러 치명적인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 계파와 동문간 이합집산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협회 권력을 특정 집단, 특정 계보가 독식하는 부작용이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금권선거의 재연이다. 과거 의협회장 선거 등에서는 선거비용으로 수억원이 뿌려졌다. 선거권을 갖고 있는 대의원들에게 고급양주를 뿌리는 후보도 많았다. 어쩔 수 없이 간선제로 가야 한다면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간선제 선거방식은 역사의 후퇴다. 양주병 선거가 재연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의사회의 주도권이 민초 회원에서 다시 대의원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거인단 구성에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대의원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무작위 비밀 추첨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꾸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의원들도 회원들 위에 군림하며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간선제는 신중하고 공정하게 운영되지 않으면 언제고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