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제약협회가 마련한 '의약품 거래 공정경쟁규약'이 윤리적으로 편향된 성향을 띄고 있으며 합리성과 타당성도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형욱 연세대 의료법 윤리학과 교수(예방의학과, 변호사)는 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개최된 의료윤리학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 규약과 협약에 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사협회 법제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 교수는 제약업체들이 내놓는 각종 규약들은 유통질서 문란행위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
박형욱 교수는 "제약업체들의 각종 규약은 단순히 민간 단체들의 사적인 자치규범에 불과하지만 공정거래법상, 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불공정행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며 "따라서 이러한 규약 또는 협약은 윤리적 관점 뿐 아니라 실정법의 관점에서도 타당성과 합리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한국제약협회가 내놓은 지침은 물론, 과거의 규약들이 많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제약단체들이 각자 규범과 규약을 내놓으면서 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 박 교수가 주장하는 첫번째 이유다.
실제로 현재 의약품 거래와 관련해 제약단체들이 내놓은 지침은 모두 3가지.
다국적의약산업협회가 2007년 공정위의 승인을 받은 '부당고객유인행위 방지를 위한 의약품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과 한국제약협회와 다국적의약산업협회가 협의해 복지부에 제출한 '의약품 투명거래를 위한 자율협약', 최근 한국제약협회가 공정위를 통해 내놓은 '한국제약협회 의약품 거래 공정경쟁규약'이다.
박 교수는 "이 세가지 규약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거래행위나 건보법상 유통질서문란행위 여부를 판단할 때 상당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특히 2009년 자율협약은 다국적의약협회와 제약협회가 합의해 작성해 놓고도 이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에 대한 합의없이 2010년 한국제약협회 규약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지침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교수는 한국제약협회의 공정경쟁규약이 윤리적으로 편향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약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규약이라는 것이다.
박형욱 교수는 "이번 규약은 보건의료전문가와 의료기관을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정됐다"며 "미국 제약협회의 규정이 의료기관이 아닌 보건의료 전문가로 규율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히 한국제약협회가 기부대상을 선정하겠다는 것은 의료기관에 대한 제약협회의 기부를 모두 부정적으로 보고 이를 억제하겠다는 목적으로 판단된다"며 "이는 제약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편향적인 태도"라고 못박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제약협회의 공정경쟁규약이 학회보다는 의료기관에 대한 기부를 더욱 통제하는 형태를 띄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학술지원은 분명 바람직한 것이며, 보건의료 전문인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학회 자체의 지원을 통해 자원이 보건의료 전문인 전체에 고르게 분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제약협회의 규약은 의료기관에 대한 기부는 최대한 통제하고 개별적인 학회 참가지원은 다소 개방적인 형태로 규율하고 있다"며 "이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제약회사의 학술대회 참가지원 등이 반드시 제약협회를 경유하도록 한 것 또한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다. 이익집단인 제약협회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형욱 교수는 "제약협회의 역할은 규약 혹은 협약에서 학회 참가지원 등의 기준과 절차를 정하고 제약업체들이 이러한 규약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학회 지원등의 행위는 이익집단인 협회보다는 별개의 공익법인에 위탁하거나 최소한 공익법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