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불법 투약, 내시경 성추행 사건 등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의료윤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일련의 사건들은 의사들에게 ‘과연 나는 의료윤리를 지키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우리나라의 의료윤리 현주소를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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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의료계에 확산되고 있는 의료윤리
<중> 끌고 갈 것인가, 끌려갈 것인가
<하> 해외 의료윤리 어디쯤 와있나
최근 의료계는 의료윤리에 대해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과거 귀찮은 존재로 치부되던 의료윤리는 이제 환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양승조 의원(민주당)의 수련의 진료실 출입제한 발언은 그 단적인 예다.
양 의원이 얼마 전 열린 심평원 국정감사에서 "임산부나 환자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레지던트 등 수련의나 제3자가 제 멋대로 진료실을 드나드는 것은 문제"라며 진료실 내에서 환자의 인권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산부인과학회 등 의료계는 진료권 침해라며 법안 발의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환자는 보다 철저히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어하고 의사는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입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이는 의료계에 '진료실 내에서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기준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가'라는 의료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가천의대 이성낙 전 총장은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뤄야하는 직업이므로 의료윤리에 있어서는 엄격해져야한다”며 “의사에게 윤리의식이 더 중요한 이유는 의사는 정상이 아닌 아픈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의료계에 의료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강남의 B안과의원 김모 원장은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한 라식수술 비용 할인 광고를 하다 의료계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당시 김 원장은 안과의사회, 의사협회 회원에서 제명조치된 것은 물론이고 동료의사에 의해 검찰에 고발조치 됐다.
그는 법원 판결에서 의료비 할인 광고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의사로 전락했다.
또한 광주시 모 정형외과 A원장이 환자를 성추행 사건은 의료계에 의료윤리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당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한동안 의사들은 환자를 대하는 데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 모 개원의는 “의사 한명의 개인적인 잘못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전체 의사들가 윤리의식이 없는 집단으로 매도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평소 의료윤리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의사들도 위 사례를 지켜보며 ‘다른 사람이 의료윤리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그 여파가 나에게 올 수 있구나’라고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최근 의료윤리에 반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의료윤리 확산에 불을 당기고 있다.
앞서 B안과의 사례는 해당 의료기관의 비윤리적 행동으로 인해 당장 환자 수 감소 혹은 진료비 할인에 대한 압박을 감수해야한다는 점에서 간과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의사 수의 증가와 의료계 경쟁 심화가 가속화 될수록 빈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의료윤리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광주시에서 벌어진 환자 성추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의사와 환자간에 이 같은 사건은 치명적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성낙 전 총장은 “의사 수가 증가하고 경쟁적인 환경에 놓이면서 의료윤리는 악화되고 있다”며 “과거에는 다른 의사가 내 환자를 진료한다고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한의사들과의 경쟁, 동료 의사들 간의 경쟁으로 비윤리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회장은 “심지어 의사가 진료실 내에서 환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터질 경우 당장 환자를 진료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의료윤리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윤리, 환자와 소통해라"
“상당수의 의사들이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진료하는 것은 진정으로 환자를 진료했다고 볼 수 없다.”
가톨릭의대 맹광호 명예교수(예방의학)는 진료실에서의 의료윤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같이 답하며 의사가 진료실에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에티켓 즉, 의료윤리는 환자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환자들은 의사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병원을 찾아온다. 특히 대학병원의 경우 몇 주씩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는데 의사가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은 문제”라며 “환자와 눈을 맞추고, 입원환자에게 스킨십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환자와의 스킨십 활성화 교육을 위해 의대생들에게 에이즈, 암 환자를 방문해 그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한 후, 우리나라 의과대학도 단순히 이론적인 학습이 아닌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의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상태나 진단치료 과정에 대해 정확히 듣길 원하고 의사에게 복종만 할 필요가 없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믿는다”며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의사들은 설명의 의무와 고지된 동의, 환자의 비밀보장 등 윤리문제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