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내 삽관유지장치, 인공호흡기, 마취환자의 호흡감시장치, 심전도 모니터 장치, 예비전원설비, 화재 대비 자동개폐문 설치(요양병원), 입원환자 40명까지 의사 2명 근무(요양병원), 비 의료인 당직근무자 1명 이상 배치(요양병원), 소방시설 완비, 전자서명 방식의 의무기록 사용….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원급의 수술환자 안전관리 강화 방안에 따른 기본 의무장비를 갖추는데 얼마의 비용이 소요될까?
인공호흡기와 심전도 모니터 장치 등 기본 장비 구매에 적게는 8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 3000만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면서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수술방을 접겠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요양병원의 근무 인력 강화와 맞물려 최근 복지부가 전자서명 방식의 의무기록 사용 공문까지 하달하면서 의료계에는 "예산 지출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는 반발 기류가 확산되는 추세다.
28일 수술실을 운영하고 있는 의원급을 중심으로 복지부의 수술환자 안전관리 강화 방안에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앞서 복지부는 의료기관 수술 환자 및 요양병원 입원환자 안전을 강화한 개정 의료법 시행규칙을 공포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의원급은 수술실을 서로 격벽으로 구획하고, 각 수술실 내 하나의 수술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수술실내 기도 내 삽관 유지장치, 인공호흡기, 마취환자 호흡감시장치, 심전도 모니터 장치와 정전 시 예비전원 설비 및 장치를 반드시 보유하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환자 안전 강화를 명분으로 수술실 규격화에 따른 제반 비용을 모두 의원에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의료기기 업체에 문의한 결과 수술실 규격화에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1억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도 내 삽관 유지장치는 국산이 거의 없는 상황. 외산은 보통 1500만원에서 2000만원에 달한다. 인공호흡기는 외산이 옵션에 따라 3천만원에서 5천만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산은 2500만원에서 3500만원 선이다.
심전도 모니터 장치 역시 고가다. 환자상태 감시 모니터(페이션트 모니터)에 뇌파를 확인하는 EEG 옵션, 가스 농도 센서를 확인하기 위한 멀티 가스 센서 옵션을 부착하면 4000만원에서 6000만원에 달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수술방을 운용하는 의원급이 위 장비들을 모두 추가로 구입해야 할 경우 최소 지출 비용만 8000만원에 달한다. 수술방에 국산 장비를 대신 외산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비용은 1억 3000만원에 달한다.
이 비용에는 정전을 대비한 UPS나 자가발전기 등 예비전원 설비 비용을 제외한 수치. 예비전원 설비까지 설치하면 금액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억원을 호가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전자서명 사용, 소방시설 완비, 근무 인력 기준 강화까지 '첩첩산중'
의원급의 전자서명 사용 공문도 불난 민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복지부는 "의료법 제2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자의무기록 상 전자서명이 진료기록부에 의료인이 해야 하는 서명의 효과를 갖추기 위해서는 전자서명법상의 공인전자서명을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자의무기록 상에 전자서명을 하지 않거나, 공인전자서명이 아닌 그 외 전자서명으로 서명하였다면 진료기록부를 작성하지 않은 것에 해당되어 행정처분(자격정지 15일) 및 형사벌(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복지부 측의 '경고'.
이 역시 문제는 돈으로 귀결된다. 전자차트에 전자서명 기능을 추가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가입비 20만원 안팎에 월 사용료 2만원 내외를 지불해야 한다.
요양병원도 인건비 지출 태풍을 만났다.
복지부는 입원환자 40명까지 의사 1명이 근무하도록 하던 규정을 의사 2명으로 변경했다. 또 화재 등 위급 상황 신속 대처를 위해 비의료인 당직근무자를 1명 이상씩 배치하고, 요양병원 출입문의 자동개폐장치 설치를 명시했다.
여기에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개설신고시 시장, 군수, 구청장이 방염재료 사용, 스프링클러, 유도등·유도표지·비상조명등·휴대용비상조명 등의 소방설비 구비 여부를 관할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에게 확인해 줄 것을 명시했다.
"손 안대고 코 푸는 정부, 수술방 접겠다"
수술환자 안전관리 강화 방안에 따른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정부를 향해 "손 안대고 코 푼다"는 날선 비판 목소리도 감지되고 있다.
환자 안전을 위한다는 수술환자 안전관리 강화 방안만 발표했지 장비를 구비해야 할 의원급에 그 어떤 지원도 없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의원은 어찌보면 민간사업자인데 환자 안전을 위해 기준을 강화한다는 생색은 정부가 내고, 그에 따른 비용은 의사들이 부담하는 기묘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의원급에서 수술하는 것이 죄라며 차라리 수술을 접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분만취약지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큰 분만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수술방 장비를 다 구비하라는 것은 아예 수술을 접으라는 말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복지부는 산부인과 제왕절개수술이 척추마취이므로 예외라는 변명을 하고 있지만 척추마취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전신마취로 전환되는 것은 마취의 기본상식이다"며 "단언하지만 전신마취가 불가능한 수술실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책입안자들이 제왕절개가 대량 출혈의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수술이라는 기본 개념도 없이 만든 제도가 바로 수술방의 기준 강화라는 것.
한달에 한 두 건의 수술을 진행하는 산부인과의 경우, 위의 비용을 들여 수술방을 구비하느니 차라리 수술을 접는게 이득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갑작스런 비용 지출 제도가 쏟아지자 대한의사협회가 이를 미연에 막지못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동욱 평의사회 대표는 "수술방 안전관리 강화의 논의에 의협도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안다"며 "과연 의협이 수술방 규격 의무화에 따른 회원 부담 소요 예산 추계와 수가 인상 등 보전책 등을 가지고 합의했는지 공식 질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푼의 수가 인상도 없이 의사는 의료노예에 불과하니 하라면 해야 한다는 식은 말도 안된다"며 "수술실 시설 구비와 소방 규제에 따른 시설 완비 비용, 요양병원의 추가 고용 인건비 지출 등을 과연 의협이 추산해 놓고 정부와 협상에 임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