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개봉 후 뚜껑을 다시 닫을 수 있는 구조의 리캡(Re-Cap) 점안제를 둘러싼 제약사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보존제가 없는 1회용 리캡 점안제가 안전에 미흡한 만큼 재사용을 부추기는 리캡 용기를 논리캡 구조로 바꾸고 용량을 1회용에 맞게 줄여야 한다는 입장.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리캡 용기와 고용량이 환자별 사용 용량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설계라며 재사용 목적을 부인하는 상황이다.
리캡 점안제의 진짜 사용 목적은 무엇일까. 제약사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몇가지 단서가 발견됐다.
특허명세서에 나온 리캡의 목적은? "재사용"
1회용 점안제는 밀봉용기로 생산되지만 보존제를 함유하지 않아 개봉 후에는 무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즉 1회 사용 후 버려야 한다.
리캡 용기를 지속 생산하는 제약사들은 환자 편의성만 앞세웠지 재사용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해성에 대해선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는 상황.
하지만 메디칼타임즈가 리캡의 특허 명세서를 살펴본 결과 리캡은 말 그대로 재사용(Re-)이 목적이었다.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를 출원한 A 제약사의 특허 공보 내용은 재사용을 주된 목적으로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제약사는 리캡 용기 특허를 두고 "본 발명은 약제, 특히 점액질의 인공누액을 수용하는 1회용 약제 용기에 관한 것이다"며 "1회용 제품은 1회에 1방울을 점안한 후 재사용 할 수 없어 용기와 잔여 누액을 모두 폐기해야 하므로 비경제적이었다"고 개발의 동기를 밝혔다.
재사용 의도는 '발명이 이루고자 하는 기술적 과제'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A 제약사는 "본 발명은 종래 1회용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데 그 기술적 목적을 두고 있다"며 "여닫이 구조를 통해 1회 사용 이후에도 잔여 누액의 재사용이 가능하게 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명시했다.
즉 용기의 마개 부분의 구조를 개폐가 가능한 구조로 만든 것은 환자 편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재사용이 주된 목적이라고 실토한 셈.
상당수 리캡 제품은 별도의 휴대·보관 용기를 제공한다. 휴대·보관 용기의 목적 역시 점안제의 재사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 단서가 나왔다.
A 제약사는 보관용기에 관한 특허문서에서 그 효능을 수회에 걸쳐 사용이 가능하고, 외력에 파손될 수 없도록 휴대케이스에 보관해 휴대성을 높이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단순한 보관용도를 넘어 리캡 제품이 다회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게 주요 논리다.
1회용이 다회용? 모순의 핵심은 리캡 용기
리캡을 옹호하는 제약사들이 내세운 "개봉 후 오염 가능성이 낮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을까.
A 제약사는 점안제 필터용기에 관한 실용신안을 내며 '필터'의 목적을 오염원 차단으로 들고 있다.
실용신안공보를 보면 "점안제 케이스는 외부에서 첨부하는 오염 요인으로부터 안전하게 보존돼야 한다"며 "기존의 점안제 케이스는 배출된 점안제의 부피만큼 공기가 유입되고, 이때 공기와 함께 오염 요인도 유입된다"고 명시했다.
오염 요인 유입으로 인해 점안제는 쉽게 오염돼 오래 보관할 수 없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항균필터가 내장된 점안제 필터용기를 개발하게 됐다는 게 실용신안의 핵심 내용이다.
현재 시중에는 대용량 점안제를 제외하고는 항균필터가 내장된 점 1회용 점안제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리캡 용기의 오염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문제는 용량이다. 현재 국내서 1회용 점안제로 출시된 제품의 규격은 0.3ml~0.8ml다. 한 방울의 점안제 크기는 0.04ml로 대략 8~20 방울의 양이 1회용으로 판매되고 이는 소비자의 재사용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1회용 점안제는 무조건 많이 담을수록 약값이 높아지는 약가 제도에도 적용을 받는다. 굳이 제약사가 고용량 리캡 용기를 거부할 필요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실제로 김선옥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사회행정약학 연구원은 '일회용 점안제의 재사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논문에서 점안제의 사용 행태에 따른 오염 가능성과 재사용의 이유가 과용량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눈꺼풀이나 속눈썹에 점안제 용기가 가끔 닿는다는 의견이 44.9%(40명), 용기의 끝이 손에 닿은 적이 있는지 묻자 가끔 닿는다는 의견이 37.1% 등으로 나타났다.
재사용시 눈의 불편함을 호소한 응답자 18.1%(13명)로 주요 증상은 충혈이나 가려움증과 따끔거림, 침침함(눈곱 끼임) 등이었다. 부작용이 없었다는 응답은 81.9%(59명)로 조사됐다.
다회 사용자 총 72명에게 복수응답으로 재사용 이유에 대해 묻자 58.8%(61건)가 "약이 남아서"라고 답해 재사용의 이유가 주로 제품의 과량과 직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순으로 18.3%(19건)가 뚜껑이 닫히는 리캡 구조로 인해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으로 인식했다고 응답했다.
식약처의 허가사항 중 적용사항에도 '오염 가능성'이 언급된다.
용기의 끝이 눈꺼풀 및 속눈썹에 닿으면 눈곱이나 진균등에 의해 약액이 오염될 수 있으므로 직접 눈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나 오염 방지를 위해 공동 사용에 주의를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식약처가 쥐고 있다.
식약처는 리캡 제품에 대해 "최초 개봉 후 12시간 이내에 사용한다"를 "점안제는 개봉한 후 1회만 즉시 사용하고 남은 액과 용기는 바로 버려야 한다"는 내용으로 허가사항을 변경했다.
환자 안전을 고려한 조치다. 반면 리캡의 목적은 재사용이다. 1회용을 재사용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리캡 용기를 퇴출시키지 않고서는 재사용이 행태를 근절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