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집행부가 결국 시작부터 평행선을 그리면서 우려했던 내부 분열이 현실화되고 있다.
비대위가 첫 발을 딛는 발대식부터 갈등이 점화되며 서로 간에 각을 세우고 있는 것.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의료계 고질병이 또 다시 도졌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24일 "의료계의 힘을 모으고자 하는 선언적 의미가 담긴 비대위 발대식에 회장이 얼굴도 비치지 않은 것은 몽니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대회원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문제는 지난 21일 진행된 비대위 발대식에서부터 시작됐다. 서둘러 발대식을 진행해야 하는 비대위와 이미 행사를 기획한 집행부 간에 의견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의협 회관 3층에서 발대식을 열었고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서울역에서 전국 보험이사 회의를 진행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이에 대해 비대위는 추 회장이 선약을 핑계로 발대식에 불참한 것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회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례적으로 성명서까지 내며 비판에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 추 회장과 집행부가 의도적으로 비대위를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비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비대위 발대식에 축사를 맡은 회장이 불참한 것은 13만 회원들의 비대위 출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더욱이 선약이 복지부 공무원들을 만나는 자리였다는데 대해 회원들은 충격과 배신감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케어 반대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저지를 위해 단식쇼까지 진행한 추 회장이 비대위 발대식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책무를 저버린 행보"라며 "투쟁과 협상의 전권을 받은 비대위를 무시한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즉각 추 회장과 임익강 보험이사 등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공무원을 만나는 부적절한 모임을 굳이 비대위 출범시간에 진행한 임익강 보험이사와 대의원 과반수 이상의 불신임을 받고도 역추진 회무를 하는 추 회장은 진정성 있게 대회원 사와와 해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집행부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집행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비대위가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발대식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주장.
발대식 일정이 잡히기 전부터 추 회장을 비롯한 일부 이사들의 일정을 전달했는데도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놓고 불참을 지적하는 것은 마녀사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전국 보험이사 연석회의는 지난 9월에 확정된 것"이라며 "이러한 일정과 상황을 비대위에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비대위가 무리하게 일방적으로 발대식 일정을 잡고 통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수차례나 이 날짜와 시간에는 회장과 집행부가 참여하기 어렵다며 변경을 요청했는데도 강행하고서는 마치 당일 일방적으로 불참한 것처럼 집행부를 매도하고 있다"며 "집행부 내부 행사도 아니고 전국 단위 행사에 정부 요인들도 참석하는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발대식 이전에 비대위와 집행부가 일정을 놓고 얘기를 주고 받은 사실은 확인됐다. 발대식 장소를 두고서도 비대위와 집행부간에 소통이 된 사실도 파악됐다.
이미 9월에 집행부가 전국 보험이사 연석회의를 위해 3층 회의실을 대관했지만 비대위가 발대식인 만큼 회관에서 개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요구하자 결국 보험이사 연석회의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기 때문이다.
의협 관계자는 "일정과 장소 모두 일방적으로 통보해 어쩔 수 없이 사전에 예약된 회의실도 비워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는데 이런 식으로 매도당할 줄은 정말 몰랐다"며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쳐서 남는 것이 뭐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백번 양보해 그래도 불참이 불쾌했다면 비대위원장 등이 회장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일이지 성명서까지 내며 추 회장과 집행부를 대외적으로 비난한 것은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냐"며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이렇듯 비대위 발족 당시부터 우려했던 내부 분열이 현실화되면서 결국 의료계의 고질병이 도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대위와 집행부가 갈라서는 모습이 보이는 것 만으로도 이미 대외적인 협상력과 투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의협 임원을 지낸 원로 인사는 "웬일로 잘 굴러거려나 했더니 결국 십리는 커녕 일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다"며 "이런 식으로 무슨 투쟁이고 협상이냐"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보며 보건복지부가 얼마나 비웃을지 생각도 하기 싫다"며 "이 고질병을 고치지 않고서는 의료계는 희망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