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반에서 성희롱·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제약계에서도 미투 고발 사례가 나왔지만 여전히 다수는 침묵을 선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 영업사원들이 경험한 실제 사례를 들어 고발을 주저케 하는 갑을 관계와 대안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하> 워라밸 좋아봤자 성희롱 다반사…"현실적 대안 부재"
사회 전반에서 성희롱·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전개되면서 현실적인 대안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약업계가 미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여성 영업사원을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가 변했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있는 반면, 갑-을이라는 위계 구조가 성희롱·추행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제도적인 근절책 도입 주장도 나오고 있다.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사회 전반의 미투 운동 전개를 계기로 여성 영업사원에 대한 일부 대응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국내 제약사에 근무 중인 A 씨는 "미투 운동 이후 폐쇄된 공간에서 일 대 일 제품 설명에 부담을 느끼는 의료진이 생겼다"며 "제품 설명을 할 때 문을 열어 놓고 하는 사례도 최근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에 점잖은 분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오해를 살만할 일을 미리 예방하려고 한다"며 "문제는 평소에도 짓궂은 인물들은 미투 운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영업사원이기 때문에 병의원에서 원장과 단 둘이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럴 때 신체 접촉이나 성희롱이 일어나도 증빙할 수 없다"며 "항의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곧 거래처 포기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병의원이 매출과 직결되는 거래처이기 때문에 갑의 위치인 의료진에게 항의를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
B 제약사 관계자는 "직업상 술자리 참석 요청이나 개인적 만남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다른 약속을 핑계로 나가지 않거나 마지 못해 나가더라도 남자 동료를 함께 대동하는 방법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한번이라도 원장들을 더 만나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고 매출 증대를 꾀한다"며 "그런 까닭에 최근 펜스룰처럼 아예 여성 영업사원과 만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까봐 오히려 노심초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소극적인 대응은 이와같은 판매자-구매자라는 구조적 원인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개인보다는 회사 차원의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 제약사 관계자는 "신체 접촉 등 불쾌한 일이 일어나도 개인이 대응하는 수단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니면 거래처를 바꿔달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며 "실적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영업일 특성상 자신이 개척한 거래처를 버리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선후배 간의 성희롱, 추행의 경계를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며 "여성 영업사원들이 지금은 50% 정도를 차지하지만 과거엔 남성이 70~80%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또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영업일을 했던 선배들은 최근 늘어난 여성 직원들의 불만을 흘려 듣는다"며 "이런 괴리감 때문에 (남성) 상관들에게 외부에서 있었던 성희롱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미투 운동에 도화선이 된 외국계 제약사의 고발은 병원 쪽 의료진에 대한 사례뿐 아니라 제약사 내부 직장 상사들의 성추행, 언어폭력 사례들도 나열하고 있다.
C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내부 직원의 성희롱 사례가 올라오는 마당에 외부의 성희롱 사례를 회사에 보고해 봤자 무용지물이다"며 "감사팀처럼 별도 팀으로 사례를 수집하고 대응하는 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현행 법적으로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됐지만 미투 운동 이후 제약사 차원의 교육 이외의 대응책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D 제약사 관계자는 "미투 운동 이후 별다른 회사 차원의 대응은 없다"며 "술자리 참석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거부하기에 심적인 부담이 덜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성희롱, 성추행을 개인이 대응해야 할 문제로 돌리지 말고 실적에 관계없는 거래처 변경이나 회사 차원의 항의와 같은 대안도 필요하다"며 "피해자가 오히려 2차 피해를 우려해 고발을 주저하는 분위기는 바뀌지 않으면 피해자 양산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