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비응급 구분 어려워" 응급의료 전문가들, 정책적 한계 지적 응급의료관리료 행정편의적…응급의료 관련법 개정까지
경증환자부터 중증환자까지 다양한 환자가 몰려드는 응급실. 이들 모두 응급환자라고 주장하지만 그 응급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전문가들은 응급과 비응급을 칼로 무자르듯이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정책적 한계를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무소속 이언주 의원과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응급환자 범위에 관한 합리적 기준 재설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2017년 응급의료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응급실은 532개소 7064병사이 운영되고 있다. 응급실 전담 전문의는 1629명, 이 중 1228명(75.4%)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중앙응급의료센터 보고를 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13.6%가 중증응급질환에 해당했다.
대한응급의학회 정진우 이사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응급의료관리료'의 문제를 지적했다.
정 이사는 "응급실 과밀화 대책으로 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진입을 어렵게 하자는 뜻으로 응급의료관리료가 만들어졌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문제"라며 "의사는 환자가 불법을 요구하거나 환자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요구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단 환자를 도와야 한다고 배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병원이 응급의료관리료를 청구하면 비응급 환자였다며 삭감하고 비용을 환수한다"라며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비응급환자로 분류해 경제적 불이익을 주고 이에 대한 판단을 의사에게 떠넘기며 부당청구라는 프레임을 걸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응급과 비응급을 구분하는 데 있어 '부당청구'라는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응급의학회에서 개발한 한국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KTAS)를 현장에 적용하고 응급실 과밀화의 원인은 '입원 대기'이므로 입원병상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응급실 과밀화는 주로 상급종합병원에서만 있는 현상이고 일반적인 게 아니다"라며 "응급실을 못가게 막는 정책이 맞는지, 적절한 응급실로 분산시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경증환자가 응급실을 안가는데 진짜 답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실 과밀화의 원인은 입원 대기 환자가 오래 머무른다는 것"이라며 "응급실을 찾은 환자와 외래로 온 환자 모두 입원 병상을 두고 경쟁한다. 실제로 입원 병상이 늘어나면 응급실 과밀화가 해소된다는 연구도 있다. 환자가 중증도에 맞는 병원으로 분산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국종 교수 "글로벌 스탠다드부터 따라해보자"
아주의대 이국종 교수는 국제 표준, 일명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중증외상환자를 분류하는 표(Table 1)를 제시하며 "표 하나로 환자 분류가 응축 돼야 하고 우리나라 소방대원들이 모두 갖고 있는 표"라며 "기본 중의 기본이고, 교과서적으로는 정리돼 있지만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뒤틀린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영국과 일본의 응급의료체계를 소개하며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80%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커버 가능한 수준의 환자지만 중증외상환자를 외과 전문의들이 백업하지 못하면 사망률이 높아지기 시작한다"라며 "글로벌 스탠다드 카피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의학회 응급의료기관평가TFT 이성우 위원장은 '응급환자'나 '응급의료' 정의에 대한 법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현재 법에서 말하는 응급의료, 응급환자 개념은 중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며 "법에서 응급환자는 중증도에 따라 다양하며, 중증도가 고정된 게 아니고 변화할 수 있고 중증도 변화에 따라 환자가 의료전달체계 흐름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들이 큰 틀에서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강민구 사무관은 응급의료 관련 체계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인 '응급환자' 정의를 다시 하는 작업에 의견을 내겠다고 전했다.
강 사무관은 본격적인 주장을 하기 전 비응급 환자에게 응급의료관리료를 받고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감사원의 시정조치 사안이라고 해명하며 의료기관이 비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관리료를 청구하는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응급환자 기준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개선할 수만 있다면 응급실에 불필요한 방문을 억제할 수 있는 효과는 거둘 수 있겠지만 법적 강제가 따르지 않는다면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응급실 진입 전에 환자를 교통정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병원 방문 이전 상담기능을 개선하고, 응급실에 와서도 환자분류를 통해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안내를 받도록하는 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