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일선 수련병원 내과 병동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내과 3년제 첫 적용사례로 전공의 3, 4년차가 한꺼번에 전문의 고시 준비에 돌입하면서 인력공백이 극에 달한 것.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전국 수련병원 내과 병동이 놓인 현실을 짚어보고, 진료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다. <편집자주>
<상> 대책 없는 인력공백에 벼랑 끝에선 수련병원들
수도권에서도 손꼽히는 대형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피로씨(가명)는 전문의 취득 후 30년 만에 응급실 당직 근무를 서게 됐다. '58년 개띠'로 내과 안에서도 곧 정년을 앞둔 '어른'으로 통하는 그였지만, 최근 내과 수련 3년제 전환 여파로 3, 4년차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나간 탓에 당직 근무를 설 수 밖에 없게 돼버렸다. 그래서 그는 정년을 3년 앞두고 먼지만 가득 쌓였던 '응급내과' 교과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이처럼 전공의특별법 여파로 내과 전공의 수련이 3년제로 전환된 이 후 2020년 1월 3, 4년차 전공의가 본격적으로 전문의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서 전국 내과 수련병원 인력공백이 극에 달했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내과 병동과 중환자실, 응급실에 이르기 까지 지난해 12월부터 무의촌 상태로 환자가 위험하다는 경고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현실화 된 3, 4년차 빈자리, 벼랑 끝에 내몰린 의료진
사실 2020년 내과 전공의 3년제 시대가 현실화됨에 따라 그동안 4년차 전공의가 담당해왔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이냐는 우려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병동이나 당직 근무를 전적으로 전공의에게 의존해 왔던 한국의 수련병원 실정을 고려할 때 전공의 수가 1/4가 갑자기 줄어드는 만큼 내과는 소위 '무의촌' 상태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결국 해법이 될 줄 알았던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의 경우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을 못 벗어나면서 내과의 인력공백 사태는 현실화 된 것이다.
실제로 메디칼타임즈 취재 결과, 국내에서도 꼽히는 초대형병원 5개 정도를 제외하고선 대부분의 수련병원 내과 교수들과 1, 2년차 전공의들은 늘어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력공백에 대한 대비 없이 3, 4년차 전공의들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전문의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서 인력공백이 두드러지자 교수와 전공의들이 이른바 고통분담하면서 당직 등의 업무를 억지로 메우고 있다 시피했다.
내과 교수들은 기존 외래에 더해 중환자실, 응급실 당직을 돌아가면서 서는가 하면, 1, 2년차 전공의들은 주 80시간인 전공의특별법을 늘 어겨가면서 내과 병동 당직을 추가로 더 서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전공의조차 부족한 지방 수련병원은 스텝들이 병동당직까지 도맡아 서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수도권 A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병원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3, 4년차 전공의가 한꺼번에 이탈하면서 내과 진료의 질은 더 떨어졌다"며 "내과 3년제 전환을 대비하고 전문의를 늘린 병원들이 얼마나 있겠나. 더구나 입원전담전문의 채용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교수들이 응급실, 중환자실 당직까지 맡게된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방 수련병원 내과 교수들은 이 같은 인력공백 사태를 소위 빅5병원이 부채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공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임상강사로 불리는 소위 '펠로우'를 무더기로 뽑아대면서 자연스럽게 지방 병원들이 피해를 더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진료비 청구 1위를 다투는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은 최근 391명의 펠로우를 대거 채용했다. 이들의 전공의 정원이 130명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3배 넘는 펠로우를 뽑은 것이다.
지방 B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소위 국내 1위 병원은 내과를 비롯해 다른 전문 과목까지 당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곳은 펠로우가 환자보고를 하기 때문에 전공의는 마치 인턴 같다"며 "서울 초대형병원들이 전공의만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펠로우까지 독식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펠로우 정원을 늘려서 내과 등의 인력공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펠로우들도 신분세탁을 위해 서울 초대형병원으로 몰려간다"며 "결국 지방 수련병원 내과의 경우 입원전담전문의는 꿈꿀 수 없는 존재인 데다 3, 4년차 무더기 이탈이 맞물리면서 인력공백 문제가 고착화됐다"고 아쉬워했다.
죽음의 계곡이 된 2개월 "환자들이 더 걱정"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 현장에서는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2개월을 '죽음의 계곡'으로까지 표현하면서 진료 질 악화를 한 목소리로 우려했다.
한 마디로 환자들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올해 의국장(chief, 치프)을 맡게 된 한 수련병원 내과 전공의는 "3, 4년차가 한 번에 빠져나가고 기본적인 인력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1, 2년차가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 늘어나다 보니 부담감이 적지 않다"며 "특히 당직 시 콜을 받게 되면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환자 진료를 둘러싼 불안감은 전공의뿐만 아니라 교수들마저 갖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인력공백 상황이 현실화되면서 10년 넘게 보지 않았던 응급실 당직을 내과 교수들이 서게 되면서 환자 진료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일선 내과 교수들의 의견이다.
동시에 인력공백에 따라 과거 5명이 보던 내과병동 당직을 3명이 보게 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내과 병동이 300병상이라고 친다면 전문의 1명당 100명의 환자 진료가 맡겨진 셈이다.
또한 전공의들의 경우는 3, 4년차 선배들이 한꺼번에 나가면서 주치의로 보던 환자들이 기존에는 25명 안팎이었는데 최근 35명 안팎으로 10명 가까이 늘어났다. 그 만큼 업무로딩이 늘어나면서 환자 진료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수도권의 또 다른 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11년 만에 중환자실 당직을 서봤다"며 "불안감이 왜 없겠나. 전공분야가 아닌 외과나 다른 타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올 때문 불안감부터 엄습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내과학회 수련부위원장인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는 "이전에 전공의특별법 여파로 교수가 병동 당직을 서던 것이 이번 일을 계기로 수도권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라며 "해법으로 제시된 입원전담전문의가 단 1~2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이러한 내과 수련병원의 현실은 빈익빈 부익부로 가게 될 것"이라며 "전문의를 얼마나 더 확보하는 데 달려있다. 여력이 충분한 대형병원들은 전문의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전략을 펼치겠지만 지방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이 이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