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치료제 1순위 기대감→미지근한 임상 결과 찬물 임상 설계부터 목표 '회복 일수'로 설정…"효과 논하기 일러"
|메디칼타임즈=최선·이인복·원종혁 기자| 바뀌었지만 바뀐 것이 없다? 코로나19 치료제 1순위로 꼽히던 렘데시비르 이야기다. 미국 FDA가 코로나19 치료제로 항바이러스 제제 렘데시비르를 조기 승인했지만 기존 상황과 크게 바뀐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대하던 치료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치료가이드라인도 아직 항바이러스제 중 코로나19에 유효하다고 권고하는 약제는 없다. 렘데시비르가 사실상 기대하던 치료제가 아닌 '제한된 용도'의 한정적 승인이라는 것.
국내 방역당국 역시 미국의 렘데시비르 임상 긴급사용 승인과 유효성 입증은 상관성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렘데시비르의 임상 결과 해석을 통해 미국 FDA에 이어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기 승인에도 불구하고 국내 방역당국이 신중론을 펼치는 이유 및 향후 렘데시비르의 적절한 공급 가능성 등에 대해 짚었다.
▲뚜껑 열어보니 '중증 환자 전용'…기대감 꺾인 유망주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중인 '렘데시비르'는 원래 에볼라 치료제다.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임상이 진행됐다.
FDA는 현지시간 1일 중증 이상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제로 렘데시비르의 사용을 긴급 승인했다.
주요 근거는 미국 국립보건원(NIAID)이 주도한 임상 실험이었다. 임상 시험은 중증 환자 1063명을 대상으로 5일 및 10일의 약물 투여 기간을 평가했다.
독립 데이터 및 안전성 모니터링 위원회(DSMB)가 중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렘데시비르와 위약 투약 비교에서 렘데시비르 투약군의 회복 기간이 약 31% 빨랐다. 위약군의 평균 회복기간은 15일이었지만 렘데시비르를 복용한 환자들은 11일이 걸렸다. 사망률은 렘데시비르 투약군이 8%, 위약군은 11.6%였다.
두 그룹의 참가자 중 10% 이상에서 나타난 일반적인 부작용은 메스꺼움과 급성 호흡 부전이었다.
이번 임상을 두고 알렉스 아자르(Alex Azar)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임상 결과가 나온지 이틀만에 FDA가 긴급 승인 명령을 내린 것은 코로나19와 싸우는데 있어 중요한 진전"이라며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움직이는 행정부의 또 다른 사례"라고 말했다.
▲회복 속도 4일 앞당겨…치료 효과로 볼 수 있나
이번 임상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무엇보다 회복 기간을 앞당긴 것을 약의 치료제의 1차로 목표하는 효과로 볼 수 있느냐가 문제다.
사망률의 경우 투약군이 8%로 위약군 대비 3.6%p 낮았지만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5일 투약군과 10일 투약군의 임상적 개선의 효과도 비슷했다. 사실상 현재 확인된 렘데시비르의 효과는 중증 환자가 4일 먼저 회복할 수 있다는 정도다.
이전에도 조짐은 있었다. 중국에서 진행한 무작위 임상 연구에서 실패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임상 참여기관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공개한 중국 임상 초안 보고서를 인용해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의 개선효과가 적고 투약에 따른 안전성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제시한 바 있다.
환자 237명 가운데 158명에게 렘데시비르를 투약하고 나머지 환자들엔 위약을 투약했지만 치명률은 각각 13.9%, 12.8% 유사했다. 게다가 중증 부작용도 18명에서 나타났다.
이와 관련 길리어드는 "논문 초안이 부적절한 임상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연구 결과가 임상환자 모집에 낮은 등록율로 조기종료됐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엔 결정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모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코로나19와 관련된 직접적인 치료제는 없었다"며 "그나마 렘데시비르가 유망한 후보약으로 거론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 환자의 회복 속도가 31% 앞당겼다는 것을 치료제의 가장 큰 가치로 두기는 어렵다"며 "항바이러스 제제의 특성상 사망률 저하나 바이러스 증식률 억제와 같은 다른 지표로 효과를 증명하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미지근한 임상결과, 미국·일본 조기 승인 이유는?
'미지근한' 임상 결과에도 미국과 일본이 조기 승인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임상 효과를 둘러싼 효과 해석에 각 나라별 가중치가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단 4일간의 회복 속도에 방점을 찍었다. 8일 기준 전세계 코로나 확진자 수는 약 393만명. 이중 미국 확진자만 129만명으로 전세계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회복한 21만 7251명을 제외한 99만 8686명이 확진 상태에 있으며 이중 1만 6995명이 중증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이 가용 가능한 병상 및 인공호흡기 등의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서는 렘데시비르의 회복 속도 증가를 주요 효과로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조기 승인의 근거가 된 임상의 1차 평가 지표는 '회복까지의 시간'으로 설정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보통 항바이러스제는 말그대로 얼마나 바이러스를 억제하느냐를 주요 지표로 놓고 임상을 진행하기 마련"이라며 "1차 지표를 회복까지의 시간으로 설정해 놓은 것은 마땅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부수적인 효과라도 노린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폭증하는 환자로 인해 병상 자원이 소중하다"며 "따라서 치료제와 관련 중증 환자가 빨리 회복할 경우 그만큼 인공호흡기와 병상, 투여 의료인력을 다른 환자 치료에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임상을 설계하지 않았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역시 코로나 환자가 4월부터 급증하는 추세다. 현재 1만 5477명의 확진자를 기록중으로 6일 예정된 긴급사태 발령 종료 시점을 이달 말까지 연장키로 했다.
미국과 일본의 렘데시비르 조기 승인은 항바이러스 제제 본연의 효능에 근거했다기 보다는 긴박한 상황에서 제제의 부수적인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상황 다르다…방역당국 '신중론'
실제로 국내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관련 미국의 렘데시비르 임상 긴급사용 승인과 치료제 유효성 관계에 선을 그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부본부장(국리보건연구원장)은 5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현재 렘데시비르와 관련 정확한 상황은 미국의 국립보건원(NIH) 치료가이드라인에서 아직 항바이러스제 중 코로나19에 유효하다고 권고하는 약제는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그는 "렘데시비르는 중증환자로 사용이 한정돼 있고, 따라서 입원기간을 줄이거나 치명률을 낮춘다는 부분에 대해 기대하고 있지만, 신종플루 유행 당시 타미플루처럼 방역적 입장에서 모든 환자에게 투약이 가능해서 전파력을 낮추는 방역대책 의미는 현재 가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1만명 선에서 정체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과 같은 급증 추세가 아닌 만큼 렘데시비르의 성급한 도입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은 물론 가격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치료와 관련 렘데시비르는 국내에서 3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식약처는 관계부처에서 특례 수입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효능/안전성 판단을 위해 임상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
식약처 관계자는 "해당 의약품은 현재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어 안전성·유효성을 판단할 단계는 아니"라며 "유효성 판단을 위해서는 각 군당 분석 대상자 수, 시험대상자 정보(증상발현 정도 등) 등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미국 NIAID의 긍정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또 안전성 판단을 위해서는 이상반응, 중도 탈락율 등 평가에 필요한 정보가 확인돼야 한다"며 "효능이 입증되고 기대 효과가 안전성을 상회한다고 판단되면 특례 수입을 할 수 있지만 아직 관계부처의 요청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관계자는 "에이즈 치료제인 칼레트라의 경우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한 적응증 확대와 관련해 자문이 온 바 있었다"며 "렘데시비르는 특례 수입과 관련해 아직 자문 요청이 들어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렘데시비르 치료제 가격, 1만 2200원 vs 550만원
렘데시비르의 가치(약가)는 평가 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의약품 가격 평가업체 임상경제리뷰연구소(ICER)는 10일간 치료 비용으로 약 4500달러(549만 4500원)을 제시했다. 이는 확진자 수와 렘데시비르를 개발하는데 소요된 비용인 10억 달러로 추산한 값이다. 소비자단체 퍼블릭시티즌(Public Citizen)은 하루 고작 1달러(1221원), 10일 치료 비용으로 1만 2200원을 제시했다. 임상경제리뷰연구소 제시값과 4504배 차이다.
다만 개발비용을 감안하면 퍼블릭시티즌의 제시값은 불가능한 수치로 보인다. 렘데시비르의 연간 생산량은 100만 도즈(dose)로 추산되는데 이런 경우 연간 수입은 12억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특히 주사제 제형을 감안하면 하루 1달러 약가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특례 수입 후에도 렘데시비르의 원활한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길리어드 관계자는 "10월까지 50만명분의 생산이 가능하고 연말까지 100만명 분 제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1월부터 생산 제조 공정의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확산 속도 등에 따라 공급난은 가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150만명 분의 도즈를 기증하기로 결정했고 국내 임상에 사용되는 약은 전액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며 "다만 일각에서 나오는 약가와 관련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10일 치료에 550만원 이야기가 나온 것은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며 "공식적으로 본사에서 약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바 없고 정부의 논의 요청도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