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억 만 년 전부터 중생대 시기 지구를 주름잡던 공룡들이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학자들은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 혹은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해 생긴 재가 오랫동안 하늘을 뒤덮어, 기온이 떨어지고 먹이사슬을 비롯한 환경 변화로 대멸종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환경이 변하면서 먹이가 부족해지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초식공룡보다 육식공룡이 더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초식공룡보다 점점 육식공룡이 많아지면서 육식공룡 간 경쟁이 치열해져 서로 싸우다 함께 공멸한 것 아닐까. 자원이 한정되면, 서로 우선하여 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고, 지나친 싸움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여 결국 공멸하게 된다.
공룡이 멸종한 과정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의료계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해 어떤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이 내는 건강 보험료와 정부의 국고지원금이 합쳐 형성된다. 국민건강보험법에는 국가가 건보 재정의 20%를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건보에 내놓아야 하는 국고지원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미납 중이다. 미납금 규모는 자그마치 24조5374억원에 달하고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중립적이고 안정적인 운용을 목표로 제시하며, 그동안 의료계가 지속해서 요구한 수가 인상을 억제해 왔다. 대통령도 인정한 낮은 수가 개선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의료계도 동의한다. 부족한 건강보험 재정에 정부도 지금까지 미납한 국고지원금을 조속히 납부하여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법을 집행하고, 정책을 수행하는 정부가 스스로 법률을 위반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법률을 준수를 요구하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재정이 더 악화하기 전에, 국민의 비판 여론이 더 커지기 전에 그동안 못한 국고지원금을 조속히 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병·의원의 수가 협상도 결렬되고 말았다. 정부가 의료계가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고, 국민이 외치는 ‘덕분에’라는 구호에 동의한다면 조속히 국가보조금을 충당하고 현실적인 수준의 수가 인상에 나서야 한다. 상급병원과 대형병원만 살리면, 의료 생태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착각은 마치 초식공룡이 죽으면, 육식공룡 또한 공멸한다는 공룡의 멸종 과정이 주는 교훈을 망각하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계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상호 정당한 경쟁을 통한 선진 의료 국가 조성을 통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풀뿌리 병·의원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죽어가는 병·의원을 되살려 의료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금의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의료전달체계의 확고한 정립 없이 선진 의료 국가 달성은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을 명심하고, 국고지원금을 조속히 내 수가 개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