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등 주요 국가들 렘데시비르 이어 공식 치료제 선정 국내 학계에선 안전성 이슈 지적…"국내 환자군에 안맞아"
다처방 스테로이드 약물인 덱사메타손이 렘데시비르에 이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공식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규모 임상시험인 RECOVERY를 통해 효과가 입증되면서 영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잇따라 공식 치료제로 지정하고 세계보건기구(WHO)도 이에 대해 호평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덱사메타손 잇따라 공식 치료제 지정…RECOVERY 임상 주효
덱사메타손은 무려 1957년에 개발된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약물로 수많은 제네릭이 나올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다빈도 염증약이다.
대부분이 정제로 처방되지만 주사제와 점안액 등으로도 출시되고 있으며 구강 연고나 비강분무제 등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던 덱사메타손이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코로나 치료제로의 효과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초기 일부 가능성으로만 머물렀던 덱사메타손은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과를 증명했고 상당수 국가에서 공식 치료제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렘데시비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 임상시험은 RECOVERY로 명명된 대규모 공개 라벨 연구로 현지시각으로 17일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을 통해 베일을 벗었다(10.1056/NEJMoa2021436).
총 2104명에게 덱사메타손을 처방하고 4321명은 표준 치료를 제공하는 대조 임상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28일 사망률을 평가 지표로 삼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계적 환기 등을 제공받고 있는 중증 코로나 환자의 사망률을 최대 40%까지 낮췄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코로나 환자의 경우 덱사메타손을 투여했을때 사망률은 29.3%로 대조군이 41.4%에 달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효과를 보였다.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산소호흡기 치료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에게 덱사메타손을 투여한 결과 사망률이 23.2%로 대조군 26.2%에 비해 양호했다.
이러한 결과들과 다양한 변수를 조정해 의학적 통계로 분석한 결과 중증 코로나 환자의 경우 덱사메타손 투여로 사망률을 17%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미 덱사메타손은 사실상 코로나 공식 치료제로 인정받고 있다. NEJM에 연구 결과가 나온 날 영국은 곧바로 이를 공식 치료제로 지정하고 24만명 분량을 선 확보했다.
일본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금까지 렘데시비르와 아비간 외에는 치료제 지정에 보수적이던 일본도 23일 마침내 덱사메타손을 공식 치료제로 선정하고 물량 확보를 공언했다.
클로로퀸 사태 등으로 치료제에 대한 논평을 자제하던 WHO도 호평을 이어가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덱사메타손의 효과는 너무나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코로나 극복에 과학적 돌파구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선 여전히 보수적 시각…"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이렇듯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세계 주요 국가들과 WHO 등은 덱사메타손에 대한 호평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보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국과 일본 등이 공식 치료제로 지정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보조 치료제라며 선을 긋고 있는 것. 일부에서는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단 학계에서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스테로이드라는 덱사메타손의 특성상 염증을 조절할 뿐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니라는 것.
대한내분비학회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낸 것도 같은 이유다. 덱사메타손이 전문 의약품이기는 하지만 다방면에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혹여 남용 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내분비학회는 "덱사메타손은 과거부터 심각한 폐질환에 염증 조절을 위해 사용하던 약물"이라며 "코로나에서도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보조치료제일 뿐이지 근본적 치료제는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어 "특히 다량의 덱사메타손을 사용할 경우 당뇨병을 비롯해 골다공증, 고혈압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중증 폐질환을 동반한 코로나 환자에게는 일정 부분 사용해 볼 수 있겠지만 나머지 환자에게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의학자들 사이에서도 신중론이 우세하다. 일부 중증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 경증 환자가 지배적인 우리나라에서는 큰 기대감을 갖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렘데시비르 등이 항바이러스 제제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직접적 작용을 하는 것과 달리 덱사메타손은 항염증제인 만큼 중증 환자의 증상 완화 이외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
특히 RECOVERY 임상에서도 기계적 환기를 받고 있는 중증 환자들에게만 효과가 검증됐을 뿐 경증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과학검증위원장(고려의대 예방의학과)은 "일부 중증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덱사메타손은 치명적 증상을 완화하는 기전"이라며 "경증 환자에게는 오히려 전체적인 면역체계 저하로 득보다는 해가 될 확률이 있는 만큼 큰 기대감을 갖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전했다.
일부 학자들은 임상시험의 설계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코로나 치료제 임상이 마찬가지지만 통제가 쉽지 않은 문제가 신뢰도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RECOVERY 임상도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오픈 라벨로 이뤄졌고 환자 분류 등에서도 세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의견.
대한감염학회 임원인 A교수는 "지금과 같은 펜데믹 상황에서 코로나 치료제 연구에 대해 보수적 의견을 내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면서도 "다만 RECOVERY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 해도 구조적인 한계는 분명한 연구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단 오픈 라벨로 진행되면서 우연이나 플라시보(위약 효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동정적 처방으로 시험, 대조 환자군을 설정해 명확한 환자군 관리와 통제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라며 "동정적 처방 결과 큰 주목을 받았던 클로로퀸이 막상 통제된 이중맹검 무작위 임상 시험에 들어가자 곧바로 탈락한 것처럼 사실 지금과 같은 판데믹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의학계에서 이처럼 비관론이 나오면서 정부 또한 마찬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덱사메타손 자체가 염증 반응을 줄이는 보조 치료제일 뿐 공식 치료제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분간 덱사메타손이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인 코로나 치료제로 이름을 올리기 쉽지 않은 배경이기도 하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많은 전문가들이 덱사메타손이 염증 반응을 줄일수도 있지만 면역을 같이 떨어트려 다른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며 "코로나 치료제라기 보다는 염증을 줄이는 보조 약물 정도로 활용이 가능할 듯 하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