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인력 인건비 폭탄은 시작일 뿐…바이탈과 몰락 본격화 우려 공보의 수급 문제는 격오지 응급실 등 필수의료 공백으로 직결
"국민들에게 송구하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의대생들 의사국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대형 대학병원장들이 의대생을 대신해 사과를 한 것을 두고 의료계 안팎으로 뒷말이 무성하다.
이들 병원장들은 2021년 인턴 배출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연쇄 반응 여파가 극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우려했지만 병원경영을 걱정하는 경영진의 우려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이들 대형 대학병원장들은 국회 등 대정부 설득에 전사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이 입을 모아 우려하는 의료계 연쇄 반응은 무엇일까.
'인턴' 공백은 대학병원 경영에 차질?
올해 의사국시(실기) 응시 의사를 밝혔던 인원은 446명. 여기에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인턴으로 복귀하는 인력에 지난해 재수생을 포함해도 내년도 인턴으로 근무 가능한 인력은 최대 1000여명. 평소 3000여명이 쏟아지던 것에 비하면 삼분에 일에도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일선 대학병원 복수의 교수, 전공의들이 말하는 올해 의사국시 응시생 급감에 따른 인턴 배출 차질이 발생할 경우 시나리오는 대략 이렇다.
일단 소위 말하는 빅5병원 중심으로 인턴 빈자리가 채워지고, 이후 서울권 대형 대학병원 일부에 한해 인턴 수급이 가능할 것이다. 서울권에서도 규모가 작은 대학병원 혹은 지방 대학병원 상당수는 인턴 수급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즉, 인턴 인력을 대체할 의료인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턴 인력을 대체하려면 추가 비용이 얼마나 발생할까.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인턴 인력 1명을 대체하려면 간호사 5명+전문의 1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주80시간이 있다고 해도 인턴 근무 시간이 간호사보다는 길고, 의료행위 중 의사로 제한돼 있어 결국에는 100% 간호사로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인턴 1명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대체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교육수련부장은 "인턴이 배출되지 않으면 결국 PA간호사 합법화가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며 "그외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이를 계기로 전공의 대신 전문의 인력을 채용하고 병동은 입원전담전문의가 역할을 하도록 한다면 선순환이 될 수 있다"면서도 "문제는 지원자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씁쓸함을 전했다.
그는 "의료계 총파업 상황에서 응급의학과 등 리스크가 높은 바이탈는 기피하고 입원전담전문의는 근무조건이 맞지 않다 보니 활성화가 안되고 있다"며 "내년도 대책이 없으면 결국 PA합법화로 흘러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혈입성' 대기 중인 전공의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내년도 인턴이 줄어든 현상은 그 다음해 레지던트 모집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도 소수의 인턴들은 대형 대학병원 혹은 인기과로의 무혈입성이 가능해지면서 지방 대학병원 혹은 기피과의 공백이 예상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방 대학병원 혹은 기피과 전공의 2년차까지도 이탈, 대형병원 혹은 인기과로 몰려갈 가능성이 높다.
이때 공백이 발생하는 기피과는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소위 바이탈과. 일선 의료진들은 바이탈과의 공백은 곧 의료대란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공의는 "앞서 의료계 파업 당시 빅5병원 중 한 곳에서 산부인과 3명이 동시에 사직했다. 서울권 한 수련병원도 외과 1년차 전공의 2명이 사직했다"며 "이들은 차라리 1년 쉬었다가 빅5병원 인기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전공의들 사이에서 이 같은 시나리오는 실현가능한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며 "앞서 바이탈과를 지키고 있던 전공의 중 일부는 전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말하는 인기과의 기준은 수입 보다는 리스크가 낮은 과. 즉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과를 선택할 경우 향후 의료분쟁 소지가 높고 자칫 의사면허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전공의는 "당장 의료계 총파업 당시에도 바이탈과 전공의부터 문제가 생겼다. 바이탈과를 한다고 보상이 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데 누가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연세대의료원 윤동섭 의료원장은 "내년에 인턴 배출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후 1~2년차 이탈하고 그 여파를 회복하는데 생각보다 오랜시간이 걸린다"며 "그 기간동안 바이탈과의 공백은 말 그대로 의료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공보의 약 400명 공백…예산으로 채우려면 얼마?
지역의료 공백도 우려가 높다. 공중보건의사로 버티고 있는 보건소, 보건지소에서는 당장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정책에 정통한 한 지방의 공중보건의사에 따르면 올해 의사국시 미응시 여파는 공중보건의사 수급 차질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단 국시 응시생 상당수가 텅빈 인턴 자리를 채우고, 전공의를 마친 전문의들만 공보의로 지원한다고 볼 때 약 400명이 부족하다. 또 이 자리를 전문의 인력으로 채운다고 계산하면 약 500억~800억원(월 급여 700만~800만원선)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나마 올해는 내과 3년제 전환 여파로 평소보다 2배수 몰려 나오면서 공보의로 대거 유입이 있었지만 내년에는 예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을 감안하면 여유가 없다는 게 일선 공보의들의 판단이다.
지방의 한 공보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전문의를 마치고 공보의 복무를 하는 비중보다 의대를 마치고 바로 군복무를 하는 비중이 높은데 정부는 달리 계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공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인력을 준비한다면 이미 채용공고를 냈어야 하는데 늦었다"며 "내년에 뒤늦게 채용하려면 인건비를 감안해 1000억원 이상으로 소요 예산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보건지소 근무 중인 공보의 수급도 문제지만 또한 지방 격오지 민간 의료기관에 배치된 공보의가 빠지면 지방 응급의료에 공백으로 이어진다고 보고있다.
격오지에 민간병원에서 근무 중인 한 공보의는 "과거 민간병원에 1000여명 이상 배치하던 공보의를 90명까지 줄였다. 현재 공보의가 배치된 병원의 공통점은 공보의가 없으면 응급실 운영을 이어갈 수 없는 곳"이라며 "이곳에 공보의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응급실 폐쇄를 의미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