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말의 무게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한다면 밤 하늘의 별을 따준다는 거짓말까지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병원에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들의 주치의가 하는 말 한 마디에 많은 두려움을 얻기도, 큰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의학과 3학년에 접어들며, 모든 의과대학생이 그렇듯 나도 PK 실습을 시작했다. 각 과마다 배우는 내용도, 실습에서 하는 활동도 모두 다르지만 대개 외과 계열과 내과 계열로 나누어 각 계열 내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외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수술방에 들어가 참관하는 것이 대부분을 이루고, 내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회진, 케이스 발표, 외래 참관이 주된 일정이다.
이 중 케이스 발표는 보통 각 과의 실습 첫날인 월요일, 교수님께서 배정해 준 환자에 대해 학생인 내가 그 환자의 담당 의사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문진 및 신체 진찰을 하고 환자와 질환에 대해 공부하여 발표하는 활동이다. 케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환자분께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진을 하다 보니, (그리고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보니) 환자분들은 우리의 질문에 많은 대답을 해주시고, 더불어 많은 질문을 하신다. 질환에 관련된 내용이나, 검사 결과와 같은 내용은 내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대답할 수 있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선생님, 저는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약 때문에 식욕이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맞으면 안 될까요?"
위와 같은 결정(decision making)이 필요한 질문들이다. 물론 이 질문들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결정은 주치의인 교수님께서 하실 것이고, 학생인 나의 생각이 실제 진료에 변화를 일으켜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다. 이러한 점도 큰 이유지만, 사실 내가 아는 것을 토대로 어렴풋이 대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환자분이 기대감을 가지거나,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 해, 그 말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이 이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후년에 의사가 된다면 그 때도 두렵다는 이유로, 책임 회피를 위해 대답을 마냥 피해서만은 안 될 것이다. 나의 말에 자신감을 갖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지식이다. 의사의 무지는 환자에게 큰 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많은 지식과 실력을 가진 의사는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내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그보다 강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근력이 필요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환자에게 하는 의사의 말은 그들의 건강과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많은 질문들에 대해 온전히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만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지식과 책임감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