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과대학 교수들이 연구비 수주 등에 대한 부담으로 번아웃을 넘어 심각한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 사직서를 품고 있다는 교수도 절반에 달했다.
특히 이러한 극도의 스트레스는 여성 교수들에게서 더욱 크게 나타났고 이 중 8%는 자살 충동까지 느끼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첫 전국 의과대학 교수 대상 번아웃 척도 조사
7일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nece에는 의대 교수들의 정서적 소진(번아웃)에 대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doi.org/10.3346/jkms.2022.37.e74).
코로나 대유행 사태 등으로 의사들의 번아웃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해외에서는 4만 2473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무려 47개 연구 등이 나오면서 메타분석까지 진행된 것(JAMA Intern Med 2018;178(10):1317–1331)과는 대조적인 모습.
하지만 국내 대학병원 교수들은 진료 활동 외에도 연구와 교육, 임상 실습 등의 다양한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번아웃에 대한 우려는 더욱 높았던 것도 사실.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이영미 교수가 이끄는 다기관 연구진이 국내 의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번아웃 연구를 진행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적어도 이러한 부담을 지고 있는 의대 교수들을 대상으로라도 번아웃의 비율은 물론 이와 관련된 요인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전국 단위로 이를 분석한 첫 연구 결과가 나온 배경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대한의학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공동으로 전국 의과대학 교수 855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벗아웃과 관련한 요인들을 살펴보기 위해 연령과 성별, 근로 조건 등 인구통계학적 특성과 더불어 학과, 소속, 직위, 재직 기간 등을 세밀하게 조사하고 번아웃을 점검할 수 있는 MBI-HSS 척도로 이를 분석한 것.
MBI-HSS 척도는 저, 중, 고로 번아웃 위험을 나타내며 점수가 낮을 수록 소진의 수준이 높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 대부분이 심각한 번아웃 결여…연구비 부담 최대 요인
주요 번아웃 현상인 정서적 탈진, 냉소주의, 성취감 결여 등을 분석하자 사실상 대다수 교수진들이 이미 번아웃 현상을 겪고 있었다.
855명의 응답자 중 34.2%가 매우 높은 수준의 정서적 탈진(≥ 27)을 겪고 있었고 66.3%가 냉소주의(≥ 10)에 빠져 있었으며 성취감이 결여된 교수(≤ 40)는 무려 92.4%에 달했던 것.
특히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인 31.5%가 이 중 두가지 이상의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었고 이 중 30.1%는 매우 심각한 정신적 문제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번아웃의 수준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유의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여성 교수진들이 모든 면에서 남성 교수들보다 벗아웃 수준이 심각했던 것.
실제로 정서적 탈진의 경우 남성은 29.6%에 불과한 반면 여성 교수는 43.2%에 달했고 냉소주의도 남성 교수는 63.7%에 그친데 반해 여성 교수는 71.6%로 확연하게 높았다.
또한 40세가 되지 않은 교수일수록 정서적 소진과 냉소주의 수준이 그 이상 나이의 교수들보다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렇게 교수들이 번아웃에 빠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주요 요인으로는 근무 시간과 불충분한 보상, 연구 부담이 꼽혔다.
실제로 의대 교수들의 69.2%가 정부가 대학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고 66.3%는 주당 80시간 이상의 너무 많은 근무 시간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또한 연구에 대한 부담이 너무 많다고 호소한 교수도 64.1%나 됐고 관료적 업무가 너무 많다(63%), 학생 교육이 어렵다(42.1%), 동료나 교직원들의 배려심 부족(38.9%) 순으로 조사됐다.
이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할 과제로 교수들은 대부분이 연구 분야를 꼽았다. 기초의학, 임상 교수들 관계없이 모두가 연구 분야가 가장 빠르게 해결돼야 한다고 답한 것.
연구 분야에서도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는 연구비 수주 부담이 43.6%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고 연구자간 갈등이 40.7%, 연구 성과에 대한 부담 16.5% 순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번아웃과 스트레스는 교수들을 상당히 위험한 지경까지 몰고 가고 있었다. 무려 47.7%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싶다고 답했고 38.3%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의견을 낸 것.
또한 이직을 시도하고 있다는 답변도 16.8%나 됐고 특히 자살을 생각했다는 답변도 8%에 이르러 심각성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는 국내 의대 교수들이 상당한 수준의 번아웃을 겪고 있으며 심각한 후유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전국 단위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의사의 번아웃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러한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의료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의대 교수들의 번아웃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주기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에 대한 전략적 정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