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레이나 CT 등 영상 분야을 기반으로 활약하던 의료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이제는 근본적 의학인 병리학으로 전장을 넓혀가고 있다.
세계 최대 병리학회를 통해 신기술을 공개하고 우수성을 검증받으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것. 실제로 24일까지 미국에서 진행되는 미국캐나다병리학회(USCAP)에서는 국내외 AI기업들이 잇따라 성과를 내놓으며 이목을 끌었다.
세계 최대 병리학회 참여한 AI기업들…페이지 등 신제품 공개
2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부터 오는 24일까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온·오프라인 등 하이브리드로 진행되는 미국캐나다병리학회에서 AI 기업들이 잇따라 참여해 성과를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로 무려 111회 개최 역사를 지닌 미국캐나다병리학회는 전 세계에서 매년 4천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병리학회. 병리학의 역사를 바꾸는 수많은 연구들이 이 곳에서 발표됐다.
그만큼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아스트라제네카나 릴리, 머크 등이 매년 메인 스폰서로 참여해 자사의 임상 결과들을 쏟아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미국캐나다병리학회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이러한 글로벌 제약사를 넘어 AI기업들이 대거 미국캐나다병리학회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영상의학을 넘어 병리학으로 AI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 미국캐나다병리학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역시 전 세계적으로 병리학 분야 AI 진단 소프트웨어를 이끌고 있는 페이지(Paige)다.
페이지는 전립선 분야를 필두로 AI 진단 소프트웨어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기업. 세계적으로 병리학 AI 분야에서 손꼽히는 이유다.
그만큼 페이지는 이번 학회에서 유방암 전이를 진단하는 사상 첫 AI인 '페이지 유방 림프절(Paige Breast Lymph Node)'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그것도 이례적으로 메인 스폰서를 자처하며 판을 크게 벌였다.
페이지 유방 림프절은 딥러닝 기반의 AI를 통해 매우 작은 미세 전이까지 잡아내는 AI 소프트웨어로 98%의 정확도로 모든 크기의 전이를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암이 의심되는 슬라이드의 모든 영역을 별도의 색깔로 강조 표시하는 페이지의 독점 기술인 티슈맵(TissueMap)을 접목시켜 전문의들의 정확한 진단을 돕는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티슈맵을 통해 양성 림프절이 의심되는 사례를 별도로 강조 표시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슬라이드마다 세심하게 전이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전문의로서는 페이지 유방 림프절이 표시해 주는 영역만 빠르게 점검하는 것만으로 로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페이지 설립자인 데이비드(David Klimstra) 박사는 "유방암 전이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진단하는 것은 환자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병리과 전문의에게는 일일이 슬라이드를 꼼꼼히 파악해야 하는 매우 힘든 작업"이라며 "페이지 유방 림프절을 활용한다면 대량의 림프절 조직을 빠르게 분석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현재 상용화된 전립선 AI와 동일한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기능 추가로 페이지 유방 림프절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 있다"며 "페이지 제품의 활용성과 가치를 크게 높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페이지는 이날 공개된 페이지 유방 림프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오는 30일 별도의 웨비나 행사를 통해 전 세계 병리학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루닛·딥바이오 등 국내 기업들도 약진…세계적 기업들과 나란히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신제품 공개 등을 통해 AI분야의 선도 모델을 제시하는 미국캐나다병리학회에서 국내 기업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이목을 끌고 있다.
국내 AI분야 양대 주자로 꼽히는 루닛이 대표적인 경우.
루닛은 이번 학회에서 암 호나자에 치료에 AI를 통한 바이오마커 활용 가능성을 입증한 연구 성과 2건을 발표하며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
루닛은 이번 연구에서 AI 바이오마커인 '루닛 스코프 IO(Lunit SCOPE IO)'를 통해 16개 암종의 암조직을 검출한 후 종양의 순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기존 평가 방식인 '차세대 유전체 분석(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과 비교해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결과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NGS가 전체 암 조직에 대한 순도 측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NGS 진행 시 루닛 스코프 IO를 동시에 활용할 경우 암 환자에게 보다 정확한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루닛은 또 하나의 AI 바이오마커 '루닛 스코프 PD-L1(Lunit SCOPE PD-L1)'에 대한 연구 결과도 이번 학회를 통해 공개했다.
루닛 스코프 PD-L1은 기존 바이오마커인 PD-L1에 800여 개의 조직 슬라이드와 40만 개의 암 세포를 학습한 AI를 적용한 제품. 이번 연구에서는 3명의 병리과 전문의가 비소세포폐암 환자 479명의 PD-L1 발현 정도를 AI 없이 판독한 경우와 AI의 도움을 받아 판독한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AI 없이 판독한 경우 병리학자 간 면역항암제 치료 반응 예측 일치도는 81.4%인데 반해 AI를 활용한 경우는 90.2%로 일치도 결과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또한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 반응 예측에서도 AI를 통한 면역항암제 치료 반응 예측이 더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찬영 루닛 최고의학책임자(CMO)는 "이번 학회에서 발표한 AI 바이오마커 관련 2가지 연구는 AI가 암 치료에 활용될 경우 예측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잘 보여준 셈"이라며 "특히 이번 학회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처음으로 AI를 통해 종양 순도를 성공적으로 측정한 결과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종양학회(ASCO) 등을 통해 잇따라 병리학 기반 AI 개발 성과를 선보이고 있는 딥바이오도 이번 학회에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암 진단 및 예후예측 연구를 연이어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딥바이오는 이번 학회에서 헤마톡실린(hematoxylin) 염색 이미지만으로 학습시킨 딥러닝을 활용한 암의 조직학적 특징 분석 결과와 전립선암 진단 모델이 추출한 특징 기반 유방암 예후 예측 연구 등 최초로 시도된 연구를 내놓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곽태영 딥바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올해는 암 진단 및 생존 분석 분야에서 최초로 시도한 연구 성과를 공유할 수 있어 더욱 뜻깊다"며 "특히 딥바이오의 핵심 연구 분야인 전립선암의 조직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다른 암종인 유방암의 예후를 유효하게 예측했다는 점은 자사의 딥러닝 모델이 향후 다양한 암 영역 진단 또는 예후 예측 연구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