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선점'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용어를 쉽고 세련된 말로 포장하는 기술이 바로 정치력 확장에 핵심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신용카드는 사실 외상카드나 빚카드 대신 쓰이는 말이다. 대부업체들이 '신용카드'라는 언어를 선점해 쓰면서 외상이나 빚이 가진 부정적 용어는 긍정적 의미로 포장이 됐다.
빚을 신용으로 포장하는 것처럼 언어 사용의 기술은 그만큼 사람들을 미혹하기 쉽게 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냐에 따라 본질이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로 포장된 신제국주의의 다른 말이고, 민영화는 '민(民)'의 탈을 쓴 사(私)영화라고 보는 것이 불편한 진실일 게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가 '공약 때리기' 전쟁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민주통합당이 들고나온 무상의료에 새누리당은 보험료 폭탄을 운운하며 사실상 '유상의료'라고 강조했다.
여야의 공약 때리기는 사실상 언어 선점을 위한 공방전에 다름 아니다.
민주통합당은 '무상' 시리즈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무상보육, 무상교육에 이어 무상의료까지.
하지만 무상의 뒤에 숨은 건강 보험료 인상 가능성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질 않는다. '무상'이라는 언어 선점의 효과가 톡톡하기 때문이다.
'세금폭탄'이라는 언어 선점으로 기득권 층을 지켜준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은 이제 '보험료 폭탄'과 '유상의료'라는 카드로 언어 전쟁에 맞불을 놓고 있다.
여야의 언어 선점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누가 될까. 결론은 벌써 나와 있는 듯 하다.
쉽고 달콤한 말. 세련된 말일 수록 쉽게 사람을 미혹한다. '공짜 간판'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