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한 일간지는 사후피임약 일반약 전환 논란에 대한 기사를 1면 탑으로 실었다.
같은 날 저녁,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경구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을 놓고 공청회를 열었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은 일반약으로,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약은 전문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들 사이에서 '여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호르몬에 변화를 주는 피임약 복용에 의사가 개입하는 것은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당연하다. 하지만 성에 대해 꼭꼭 닫혀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너무 이상적이다.
청소년이나 미혼여성이 산부인과를 찾는다고 하면 색안경을 먼저 낀다. 결혼을 한 여성들도 산부인과를 쉽게 찾지 못한다.
어떤 약을 의사 처방 받아서 사야 하는지 논하기 전에 산부인과에 대한 여성과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 더 시급해 보인다.
산부인과의사회가 주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소장은 산부인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했다.
한 여성이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딸의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였다. 병원에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은 이들 모녀에게 쏠렸다. 딸이 사고쳐서(?) 왔구나 하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심지어 간호사도 작은 목소리로 "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데는 의사와 약사도 한 몫하고 있다.
사후피임약 처방을 받으러 병원을 다녀온 사람들은 "산부인과에서 너무 쉽게 응급피임약을 처방해 준다"고 말한다.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으려고 할 때 의사들은 이 들에게 피임교육을 하고 있을까?
약사들은 경구피임약을 사러 약국에 온 여성에게 약의 올바른 사용법, 피임법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을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의약사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배정원 소장은 "산부인과에 가기까지가 문제다.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피임약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사회가 10년 전보다 훨씬 더 보수화 돼 있다. 요즘은 아예 건강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의사회 및 학회는 여성들의 심리적 거리를 깨기 위한 일환으로 '여성건강의학과'로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밖에도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피임과 행복한 임신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캠페인과 성교육의 대상인 여성, 국민들 피부에는 크게 와닿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문약, 일반약 전환을 목소리 높여 외치기 전에 인식 전환을 위한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