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 달 치료용 첩약 보험급여 시범사업을 3년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투입 예산은 6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메디칼타임즈가 첩약 급여화의 근본적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과정과 근거도 없이 보험급여를 하겠다는 결론만 있다. 정부도 목적지만 정해놓은 상황이다. 급여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정의 자체도 없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여기에 연간 2000억원을 쏟아 붓는다.
바로 내년 10월 시행되는 '치료용 첩약 보험급여' 시범사업 얘기다.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에 목적지로 가는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첩약 보험급여 자체를 강하게 반대한다. 보험 급여를 인정해줄 과학적,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약품은 사람에게 쓰이기 위해 동물실험, 보통 3상에 걸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신약이 나오는데는 통상 10년이 넘게 걸리는 이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급여 적정성, 경제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임상을 통한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한방에는 이러한 과정이 전혀 없다.
"300년 역사적 근거"…"한약은 검증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산하에 약에 대한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를 하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보험등재를 원하는 제약사는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신의료기술 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 등에 따라 대체약제와의 임상효과 비교, 투약비용 비교 등이 담긴 경제성평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위원회는 자료를 바탕으로 보험등재, 적응증 확대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통과하면 제약사는 건강보험공단과 약가협상을 거치게 된다.
보험 등재 신청부터 약값이 결정되기까지 최대 1년이 걸린다. 사람 몸에 강력히 작용하는 항암제의 경우 그 시간이 배로 걸린다. 어쩌면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 산하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을 설립했다. 약에 대한 부작용 신고 및 관리도 엄격하기 위해서다.
이런 관리를 통해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나면 아무리 잘나가는 약이더라도 퇴출된다. 역사가 긴 약도 마찬가지다.
당뇨병약 아반디아, 비만약 시부트라민이 대표적이다.
아반디아는 1999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이후 국내 시장에서만도 4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 했다.
하지만 심장발작과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등 안전성에 계속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시부트라민도 1997년 비만치료지로 FDA 승인을 받았지만 뇌졸중, 심근경색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2010년 국내 시장에서 사라졌다.
의료진 사이에서는 시부트라민 퇴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만큼 약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의료계는 이런 검증 과정이 없는 첩약 급여화를 반대한다.
첩약 급여화가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특위) 유용상 위원장은 "의료는 수천억, 수조원 시장이 형성돼 있어도, 2000년 넘는 역사가 있어도 근거를 따져 인체에 치명적이면 퇴출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한약은 연구도 없고, 검증도 안돼 있다. 모든 약이 거쳐야 할 국제표준을 전혀 거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한의계는 300년의 역사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정곤 회장은 최근 "한약이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지만 300년 넘게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며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투약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첩약 뜻도 애매모호 "막연한 상황"
한약의 과학적 근거 찾기에 대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산하의 심평원, 식약청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산하 기관 관계자들은 한약 급여화에 대한 절차도 없고, 복지부로부터 지침이 내려온 것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첩약이라는 용어에 대한 뚜렷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다.
현재 한방에서는 급여가 인정되는 '생약제제'가 있는데 첩약은 또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약사법상 생약제제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으로 제약사에서 제품으로 이미 만들어져 나온 것을 말한다. 하지만 첩약은 조제의 개념이 강하다. 약사법상 첩약에 대한 용어 정의가 따로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험난한 길이다. 막연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약은 역사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한약처방의 종류 및 조제방법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기성 한의서 11종에 수록된 한약 처방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다시 심사하지 않아도 된다.
즉, 한약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위해 제약회사들이 하고 있는 약리작용, 약동력학적 임상시험, 독성시험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유용상 위원장은 "약은 인체에 적용되는 인권에 관한 문제다. 한약 먹고 독성, 후유증 생기면 결국 현대의학적으로 치료를 하게 된다. 독성 때문에 간이 망가지든 말든 법에 없으니까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인권 차원에서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위원장은 "한의학이 현재에 맞지 않으면 개혁을 하든지 해야 한다. 2000년 전 중국 이론 받아서 계속 주장하고, 민족주의에 기대는 것은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