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출신 의사가 바라보는 북한의 의료현실은 어떨까.
"예방접종 백신을 지원받으면 뭐하나. 전기공급이 되지 않아 보관이 어렵고, 이송이 어려워 유통기한을 넘긴 백신을 받기 일쑤인데…"
10일 서울의대 통일의학센터와 안홍준, 김춘진, 문정림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통일의학포럼 창립 심포지엄에서 북한 외과의사 출신의 한 탈북민은 북한의 의료현실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북한은 해외에서 의약품을 지원 받아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고, 외부에서 지원받은 예방접종 백신을 (제 때 필요한 곳에 공급하지 않아서)특정 병원의 샘플로 전락시키는 국가였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느낀 바로는 한국 정부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인요한 대통령직 인수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에게 새정부의 대북의료지원 계획을 물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인요한 부위원장은 "지난 5년간은 아무 것도 못했다"고 평가하며 "박근혜 당선자에게 대북 의료 지원에 대해 정치적인 것과 결부시키지 않고 인도적으로 지원할 것을 강력히 주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적어도 새 정부에선 정치적인 이유로 대북의료지원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 부위원장은 유진벨 재단을 통한 대북지원사업을 추진했던 사례를 통해 북한의 의료실태에 대해 소개했다.
한 번은 차량에 결핵 백신을 싣고 북한 회령에서 해산시까지 이동하던 중에 차가 고장이 났다. 그는 마침 의사협회가 북한에 기증한 앰블런스가 있어 해당 도 보건국장에게 이를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보건국장은 차량에 실려있는 모든 백신을 자신의 도에 줄 것을 요구했다. 다른 도민들 사정은 안중에 없었다.
이처럼 옆에 있는 도민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북한의 의료현실은 팍팍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예방접종 백신도 정상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공급되기 힘들다.
인 부위원장은 "최근 300만원하는 태양열 냉장고를 공급했다. 몇년 전 석유로 돌리는 냉장고를 지원했지만 석유 질이 떨어지다보니 작동을 안했다. 전력이 부족해 전기냉장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평양을 제외하고는 전기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면 맞다"면서 "한국 의사가 북한 환자를 진료해 주는 것도 좋지만, 북한 의사가 자국의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북한은 탈수현상이 심해지면서 사망이 이르는 어린이 환자가 많다. 그들이 부모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이른바 죽음의 방이라고 부른다.
그는 "북한의 의료진은 어린 환자들의 탈수현상을 막지 못해 진료를 포기하고 죽음의 방으로 안내한다"면서 "식염수, 과당 수액만 무제한으로 공급해도 이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각에선 각 도에 수액공장을 세우자고 하지만 당장 공장을 돌릴 에너지도 없는 북한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실질적인 지원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