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병원장은 '환자행복을 위한 의료혁신' 이른바 '비전 2020'을 선포했다.
그 일환으로 환자중심 다학제, 통합진료를 제시했다. 환자 한명을 여러명의 의료진이 협업진료하겠다는 얘기에 외부에선 "저게 되겠어?"라며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선언적인 의미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은 파격적인 지원에 나섰고, 그 첫번째 수혜 진료과인 중환자의학과에 변화가 시작됐다.
당초 중환자실 전담의는 교수 2명에 불과했지만 교수 3명, 임상강사 4명을 충원하면서 전문의 출신의 중환자 전담의가 총 9명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중환자실 환자들은 24시간 전문의 진료가 가능해졌다.
급기야 다른 병원에선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중환자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중환자의학과'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송재훈 원장이 강조했던 다학제, 통합진료가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설마 중환자실에 스텝 인력 충원해줄까?"
2013년 3월 서지영 교수(중환자의학과 과장·호흡기내과)는 진료과에서 스텝 한명 TO를 늘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어 100% 반영될 거라고는 꿈도 안꿨다.
그런데 왠일인가. 그가 제시한 인력증원 계획이 그대로 반영됐다. 그는 "가슴이 벅차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스텝 한명 늘리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조차 못했죠. 설마하는 마음으로 교수 3명 충원을 요구했는데 바로 결제가 나더라고요. 저도 내심 놀랐죠. 여기에 임상강사 4명까지 충원해 총 9명이 되면서 정말 해볼만 합니다."
상당수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전담의 역할을 하고 그나마도 병동을 오가며 중환자실까지 맡고 있는 상황에서 전담의 인력으로 교수급 의료진 3명을 늘렸다는 것은 상당한 파격이다.
당시 서 교수는 병원의 파격적인 투자에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1주일에 한번씩 야간당직 근무를 서야하는 부담이 있지만 어쩌면 평소 그토록 바라던 중환자실 환경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파격적 투자에 중환자실 시스템 변화
지난 5월 7일 오전 7시 45분. 삼성서울병원 별관 3층 중환자 전담의실.
서지영 교수는 물론 흉부외과, 심장내과 교수, 전공의, 약사, 간호사, 영양사 등 내과계 중환자실 회진팀 구성원 8명이 모였다. 그리고 짧게 회의를 마친 후 바로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서 교수, 이 환자는 조만간 수술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때?"
"이 분야라면 흉부외과에서 전문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환자 한명을 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치료방향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것도 특정한 날, 일부 환자가 아닌 매일 아침 중환자실에 모든 환자가 그 대상이었다.
"교수님, 이 환자 피 검사는 언제 하면 될까요?"
"김 간호사, 이 환자는 수시로 상태확인 해주시고 피검사는…"
"아, 김 선생(전공의) 혹시라도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교수님, 이 환자는 약 함량을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영양사 선생님, 이 환자 어제 설사 증상이 있는데 식사를 좀 바꿔야할 것 같아요."
순식간에 많은 대화가 쏟아졌고 짧은시간 많은 정보를 공유했다. 환자 한명을 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최상의 치료법에 대해 논의하고 치료방향을 정한다. 매일 오전 8시에 시작된 회진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중환자의학과란 이런 것…기준을 제시한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은 꽤 여유가 있다. 적어도 '중환자실이 없어서 응급환자 못 받는다'라는 말은 안나올 정도로 일정 수준의 공실률을 유지하는 편이다.
만성기에 접어든 환자로 늘 여유 병상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하는 다른 대학병원과는 사뭇 다르다.
"오늘따라 더 여유가 있네요. 병상이 찰 때도 있지만 가능한 만성환자가 병상을 낭비하는 일은 없도록 관리하는 편입니다. 물론 2인실 보다 병실료 수가가 낮은 중환자실에 더 있으려는 환자와 갈등을 빚기도 해요.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급성기 중환자를 위해 일정 공간은 늘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중환자의학과 개설 이후 내과 중환자실 병동에 보호자 면회를 확대했다. 이 또한 감염 우려로 가능한 보호자 면회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병원과 다른 부분이다.
이는 감염 관리를 해야하는 서 교수 입장에선 부담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면회를 확대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감염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면회 확대를 통해 환자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통한 치료효과가 더 높다고 봤다.
실제로 해외 논문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중환자실 면회 확대에 따른 감염 위험성이 크지 않다.
반면 고령의 환자는 보호자 없이 중환자실에 홀로 있다보면 심할 경우 착란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감안해서도 보호자 면회 확대는 긍정적이다.
이처럼 새로운 변화에 들떠있지만 그에 따른 부담이 뒤따르는 게 사실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첫 개설된 중환자의학과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게을러질 수가 없네요. 좋은 선례를 남겨서 다른 대학병원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중환자의학에 몸담고 있는 의사로서 참 운이 좋은 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