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외과재난대응팀 발대식
28일 늦은 오후. 서울 63빌딩 별관 주니퍼룸에서는 생명을 상징하는 '연두색' 점퍼를 입은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외상외과 전문의들이다.
외상외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구성된 '외과재난대응팀' 발대식을 위해서다.
전날 밤 트럭에 깔린 응급외상환자를 긴급 수술하고, 밤새 케어하다가 발대식을 위해 참석했다. 부산, 울산, 목포 등에서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대한외과학회는 최근 외상외과 전문의 30여명을 권역별로 5개 팀으로 나눠 재난 상황에 긴급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응팀을 구성하고 28일 서울 63빌딩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정부도 아니고, 의사들이 직접 나서 재난에 대비한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앞장 선 것은 처음이다.
외과학회 자학회인 대한외상·중환자외과의학회 소속 외과 의사들이 주축이 됐다. 준비기간만 두달. 고대구로병원 외과 김남렬 교수가 재난대응팀 팀장을 맡았다.
재난대응팀의 활동 목표는 '전문화, 조금 더 빨리, 한 발 더 가까이'로 정리할 수 있다.
외과학회 이사회는 재난대응팀이 재난, 재해 발생으로 중앙 또는 지역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지원 요청을 받거나 자체 판단에 따라 대응팀을 파견할 수 있다.
현장 출동한 재난대응팀은 현장의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장의 협조에 따라 현장에서 의료활동을 할 예정이다. 재난 현장에 전문의가 직접 참가해 임상을 수행한다는 것.
재난대응팀은 이같은 활동들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소방방재청과 함께 모의 훈련 등도 계획하고 있다. 지상 접근이 어려운 경우에 대비해 헬기레펠 훈련 등도 해야한다.
현재 대응팀은 외과 전문의로만 구성돼 있지만 앞으로 외상환자와 관계있는 타과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도 포함할 예정이다.
재난대응팀의 역할은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는 경기·강원 지역을 총괄할 3팀 팀장을 맡았다.
이 교수는 "재난이라고 해서 테러, 지진 등 거창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교통사고, 건물붕괴, 비닐하우스 붕괴 등 우리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들도 재난이다"고 의미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시간에도 외과 의사들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외상환자를 위해 불철주야 산발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로 묶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대응팀은 환자와 제일 가까운 거리까지 의사가 직접 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몸으로 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발대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가한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도 재난대응팀 출범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다.
그는 "재난이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다. 사회적 재난을 적절히 대비하느냐 못하느냐가 선진국으로 가느냐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또 "재난에 있어서 누구보다 외과의사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하는데 그동안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주도하지 않는 것을 외과 의사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응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외상환자는 시간이 생명이다"
외과학회 정상설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외과)은 현재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있어서 필요한 것으로 '시간과 국가 지원' 두 가지를 특히 강조했다.
그는 전공의 수련시절 은사의 말을 예로 들었다.
교통사고로 출혈이 심한 20대의 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다친 장기를 제외하고는 신체가 건장한 젊은 사람을 보내는 것은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
정 이사장은 "외상환자는 시간이 생명이다. 후송이 빠르거나 의사가 환자에게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후송체계는 잘 돼 있다. 하지만 응급환자를 빠르게 후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민의식이 지금보다는 더 성숙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면 빈공간을 찾아서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모든 차가 속도를 낮추거나 아예 멈춰 서 있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 이사장은 "대량재난 발생시 응급의료체계 관련 팀 주축에 외과의사가 있어야 한다. 외과의사가 팀장이 돼 재난현장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기서 국가는 생명을 다루는 가치에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현재는 권역별 외상센터 등 하드웨어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모의훈련,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데에 국가가 들어와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