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개최한 의료기기 제도 개선 설명회는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300명이 넘는 업계 종사자들은 대강당을 가득 메운 것도 모자라 행사장 밖에서 설명회를 듣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설명회에 뜨거운 관심이 몰린 이유는 임상시험자료 제출 의무화 의료기기 지정 때문이었다.
이 제도는 식약처가 내년부터 시행예정인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 중 제7조 2항의 의료기기 허가심사 자료 제출 범위를 새롭게 개정한 것.
이를 통해 의료기기업체들은 지정예정인 68개 고위험군 의료기기 허가신청을 할 때 인체대상 임상시험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식약처는 이 제도가 의료기기 안전성ㆍ유효성을 확보해 국민건강 향상에 일조하고, 국내 의료기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는 식약처가 성과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국내 제조사를 비롯한 수입업체들의 현실을 무시한 졸속행정을 펼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선진국 이미 도입…임상시험 허가체계 필요"
현행 의료기기 허가신청은 기존에 허가받은 의료기기 품목과 구조ㆍ원리ㆍ성능ㆍ사용목적 및 사용방법 등이 동등하면 임상시험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신청업체가 식약처에 기존 의료기기와 사용목적, 작용원리, 원재료 등에 대한 본질적 동등품목 비교표를 작성해 제출하면 임상시험을 면제해준 것.
임상시험자료 제출 의무화는 현행 규정을 개정해 앞으로 일부 고위험군 의료기기 허가신청을 할 때 인체대상 임상시험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것을 골자로 삼고 있다.
식약처는 이 같은 규제 신설 근거로 다양한 명분과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먼저 해외 선진국들은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는 것.
식약처에 따르면, 미국 FDA는 3등급 의료기기 462개 품목 중 85%에 해당하는 362개 품목을 PMA(PreMarket Approval, 영구이식 또는 생명유지 장치 등에 임상시험자료 제출 의무화대상을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 대상으로 지정해 허가신청 때 임상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신의료기기와 4등급 및 일부 3등급 의료기기 35개 품목을 임상시험자료 제출이 필요한 의료기기로 지정ㆍ관리하고 있다.
EU 또한 모든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임상적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임상데이터로 임상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식약처는 인공심장판막 등 고위험군 의료기기의 엄격한 안전성ㆍ유효성 검증을 통한 국민보건 향상뿐만 아니라 국내 의료기기의 세계시장 선점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상시험 기반 허가체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현실 무시한 식약처 성과내기 급급"
의료기기업계는 임상시험자료 제출 의무화에 강한 반발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우선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는 의료기기 허가제도의 규제적 측면이 강하다는 시각이다.
기존 의료기기 허가신청 시 제출서류는 이미 선진국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의료기기 안전성ㆍ유효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체대상 임상자료 제출 의무화가 불필요한 행정규제라는 것.
또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업체 대부분은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인력과 자금을 갖추지 못해 임상시험 자체에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약처는 제도 시행일이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유예기간을 설정해 업계 규제부담을 완화했다고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며 "최소 3~5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상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면 허가기간 지연과 허가비용 증가로 신제품 개발과 출시를 포기하는 업체들이 생겨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기기단체 한 관계자 역시 "업계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한 제도시행은 결국 업계 혼란만 가중시키는 졸속행정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올 초 식약청에서 승격된 식약처가 당초 약속과 달리 업계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기는커녕 무리한 성과내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