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와 상대평가.
교육의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지속되는 최대의 화두 중 하나다. 그만큼 장단점이 분명하기에 고등 교육의 산실인 대학에서 조차 평가 방식이 수시로 변경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의학교육만큼은 상대평가가 절대적 평가 방식으로 굳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의학교육의 폐쇄성과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다.
사실 대학의 대부분 전공과목 학생들은 졸업 이후 다양한 분야로 퍼져 나간다. 가령 법학을 전공했더라도 실제로 사법고시에 응시하는 학생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학과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거의 예외 없이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고 90% 이상이 인턴과 전공의 수련기간을 거친다. 사실상 전문의 취득까지는 진로가 하나의 트랙으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면에서 상대평가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 놓아야 인턴, 전공의 선발 시 일명 커트라인을 정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수련병원들은 인턴, 전공의를 선발할 때 의사국시 성적과 의대 성적을 가장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계량화된 성적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발 방식은 장점과 비례해 단점도 상당하다. 최근 의학교육에서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인문학적 소양 등이 바로 상대평가의 폐해다.
의학 지식을 달달 외워 수도 없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의대생의 입장에서 최대의 덕목은 암기능력이다.
결국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전문의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암기력이 뛰어난 학생이 좋은 의사로 평가된다는 뜻이다.
나 외에 모든 사람이 경쟁자가 되는 것도 폐해 중의 하나다. 내 동료를 눌러야 좋은 성적을 받는 시스템 내에서 배려와 소통, 협업은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그렇기에 최근 학점제를 폐지하고 모든 교육과정을 Pass 와 Non-Pass 즉 절대평가로 전환한 연세의대의 파격적인 행보는 눈에 띄는 부분이다.
전국 상위 0.1%에 들어가는 최우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암기 능력을 평가해 또 다시 A, B, C, D, E로 점수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연세의대의 판단이다.
차라리 자기 주도 학습과 동료간의 협동 학습 능력을 키워 사회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의사를 키우겠다는 목표다.
물론, 이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우선 연세의대 졸업생들과 아직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타 의대 졸업생들간 비교 분석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러나 최근 의사에게 더 높은 도덕성과 윤리, 소통 능력을 기대하는 사회적 요구를 감안할 때 변화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시행착오 없는 진보는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는 용기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