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된 밥에 재를 뿌린 심정. 이렇게 아쉬울 때가 있을까. 조인성 경기도의사회 회장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마부위침(磨斧爲針: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듦)을 내세운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2월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실 앞. 밤 10시를 넘긴 시각이었지만 조인성 회장은 초조한 마음으로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빌고 또 빌었다. 소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이제 됐다"며 마음을 내려놨다.
바로 의료인 폭행이나 협박시 형사처벌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의료인진료방해방지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진료방해방지법안에 대한 조 회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자신의 집행부 공약이기도 하거니와 수십년간 의료계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까닭이다.
2012년 집행부 출범과 동시에 법안 발의 작업에 착수했다. 적어도 더 이상 칼에 찔리거나 매맞는 의사가 깜짝 뉴스꺼리로 전락하는 일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국회를 밥 먹듯이 드나들며 복지위 위원들 설득작업에 매달리는가 하면 시민·환자단체와도 긴밀히 접촉하며 공을 들였다.
지난 7월 법안이 가중처벌이라며 그렇게 반대하던 환자단체연합회도 안전한 진료실 환경을 같이 만들어보자며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조 회장은 법안심사소위가 법안을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합의하자 "이제 7부 능선을 넘었다"며 "향후 남은 절차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사위, 본회의 통과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사이. 안도감은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레 시민, 환자단체가 법안 통과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 회장은 "법안심사소위 마지막 날 의료법 개정안을 일괄 상정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법안을 추후 논의하기로 방향을 틀었다"면서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이 본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한 안건이 중도에 보류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환자단체의 극렬한 반대에 국회가 슬쩍 발을 빼고 2월에 다시 논의하자고 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그만큼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포용할 수 있도록 법안을 보완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시민·환자단체들은 의료인 폭행이나 협박시 5년 이하 징역이나 2천 만원 이하 벌금 등의 규정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 의료계와 환자단체간 치열한 논리 대결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 회장은 "2월 법안심사소위 재논의와 법안 국회 통과에 재도전하겠다"면서 "법안이 궁극적으로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한 진료 환경 구축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 일에는 꾸준함보다 무서운 무기는 없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던 한 노파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학문을 완성했다는 이백(李白)의 일화. 조 회장이 최근 경기도의사회 신년교례회 현장에서 굳이 '마부위침'이란 고사성어를 꺼낸 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 회장은 "소설 갈매기의 꿈에는 '그 어떤 문제꺼리도 당신에게 줄 선물과 함께 온다'는 구절이 있다"면서 "마부위침의 고사처럼 정성과 끈기로 올해를 가꿔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