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의료기기업계는 역대
최악의 불경기가 예상된다."
평소 친분이 있던 다국적의료기기회사 임원들과의 모임에서 나온 절망적인 전망이다.
전 세계 의료기기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올해부터 의료기기에 세금을 부과키로 결정했고, 금융 위기에 허덕이는 유럽 의료기기시장은 여전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국내 시장은 '위기경영'을 언급할 정도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
업계 경력 10년 이상의 임원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이유는 점점 강화되는
의료기기 허가심사 및
중복규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식약처가 임상기반 허가심사 강화를 이유로 추진 중인 의료기기 임상시험자료 제출 의무화는 해를 넘겨 올해도 여전히 고민거리다.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업체는 물론 다국적기업조차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인력과 자금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그나마 식약처가 제도 시행을 2년 유예해 부족하나마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게 업계의 위안거리.
의료기기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개선에 대한 불만 역시 여전하다.
지난해 말 정부는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의 경우 심평원 요양급여 결정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고 즉시 판매가 가능토록 제도개선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도개선안이 신의료기술평가 순서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개선책이 없다며 한계성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식약처ㆍ심평원ㆍNECA의 중복규제 해소를 위한 '평가 일원화'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지난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업계가 보여준 적극적인 제도개선 의지는 어두운 전망에 한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업계는 복지부ㆍ식약처와 같은 정부기관과의 관계에서 항상 '을'의 위치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근래 들어 무리한 제도시행에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식약처 소관의 의료기기 임상시험 자료 제출 의무화는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제도개선을 적극 건의해 유예기간을 연장시켰다.
신의료기술평가 역시 지속적인 업계 의견 개진을 통해 복지부가 TF팀을 꾸려 제도개선을 진행하는 성과를 이뤘다.
업계는 지난해 성과를 교훈삼아 최악의 불경기에 대비한 위기극복 열쇠가 정부가 아닌 업계 스스로 쥐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되새겨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