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개원 후 지역 의사회에 열심히 나오던 후배가 어느 날부터인가 의사회 모임에서 얼굴을 통 볼 수 없게 되어 궁금하던 차에 들려온 소식은 병원 문을 닫고 떠났다는 전언이었다.
개원을 준비하며 여기 저기 열심히 인사를 다니던 밝은 모습의 후배는 왜 소리 소문 없이 떠나야 했을까?
1970년대 중반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이 땅에 도입 된 이후 집안에 누군가 중병이라도 걸리면 집 팔고 땅 팔아 치료한 뒤 집안이 거덜나던 그런 시절은 사라졌다.
대신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매년 병원을 폐업하고, 주변 선후배한테 인사도 하지 않고 사라지는 의사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성적이 좋으니 의대에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권유 또는 친인척 의사들이 "너는 꼭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권유로 의대에 진학한다.
의대 과정이 끝나고 군의관, 공보의로 병역 의무를 다 한 후 사회에 진출하는 의사들은 봉직의(대학병원 교수, 종합병원 과장, 공직의)로 자리를 잡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또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개원의사의 길을 갈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형병원이나 공직에 근무하면 조직의 일원으로 일정 부분 진료에 전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원의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배운 의술을 활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니라 정부 즉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결정한 지침에 따라 진료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0년 의료대란 때 의사들이 가장 먼저 외친 것이 바로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며 의사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의사들은 배운대로 진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진료를 강요받는 게 현실이다.
학교와 수련병원에서 배우고 가르침을 받고 의사가 되었는데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일방적으로 만든 지침대로 진료를 하라니.
배우고 수련받은 교과서 내용보다 정부가 정한 지침 눈치를 보며 진료를 강요받는 수많은 의사들의 마음은 어떨까?
차라리 전국의 모든 의대를 몽땅 다 없애 버리고 건강보험사관학교를 만들어 정부가 국고로 운영했다면 이토록 커다란 모멸감은 없었을 것이다.
배운대로 진료 할 수 없는 로봇, 저수가에 기인한 열악한 경영 상태,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에 불과한 봉직의, 토끼같은 처자식 부양에 매일 밤 악몽을 꾸어야 하는 게 요즘 의사들이다.
그냥 2평 진료실에서 면벽수련하며 살아야할까?
올바른 의료제도를 되찾기 위한 의료계 총파업이 예고됐다. 11만 의사들이 처한 위치와 입장은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11만 의사들이 배운 교과서는 모두 똑같지 않았던가?
모두 함께 배운 교과서대로 진료하고 싶다는 동료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은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그동안 주변 동료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수많은 히포크라테스 형제들이여!
지금은! 이제는! 절박한 형제들의 외침에 그대들이 응답할 차례다. 외침을 듣고도 응답 할 용기가 없다면 더 이상 지도자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동료도 아닌 약육강식의 링에서 마주 친 경쟁자에 불과할 뿐이다.
매년 4천명씩 배출되는 새내기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형제들의 외침과 응답을 듣고 모두 환하게 웃는 모습, 행복해 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