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기자는 원외처방약제비 환수와 관련된 취재를 하고 있었다.
몇백원의 환수금을 위해 몇천원의 등기를 발송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실태에 대해 관련 개원가들을 취재하려 했으나 인터뷰는 번번히 실패했다.
개원가들이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는 "(발언 후 이어질 공단의)보복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진료와 관련된 의견을 진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사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상황. 무엇이 문제일까.
혹자는 말한다. 의사는 '의사면허'를 통해 국가로부터 진료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고. 말만 듣고 보면 의사면허는 적어도 진료에 있어서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특권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막강한 특권을 가졌다는 의사들이 왜 진료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피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면허는 전문성을 요구한다. 여기서 전문성이랑 불확실성이 아닌 유효성과 안전성을 담보로 한다. 그래서 면허권자에게는 권리가 주어진다.
극단적으로 운전면허를 예로 들어보자.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요건을 갖추고 시험을 통과해 면허를 부여받으면 비로소 운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러나 권리의 이면에는 법과 제도에 따른 규제도 존재한다.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만일 도로교통법에 운전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만 존재한다면 누구도 운전면허를 취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운전면허를 취득하려 하지 않고 면허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시 진료로 돌아와서, 의사면허는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 자격을 취득한 것임을 인정하는 면허이다.
의사면허는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면허보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또 의료법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의료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의료법 본연의 취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이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환자를 위한 적정하고 전문적인 진료와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주어질 때 의사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의사들은 말한다. 진료와 관련된 법과 제도가 과도한 규제 일색이라고.
과도한 규제가 이어지면 규제의 대상은 규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아니면 규제를 깨뜨리려 할 것이다.
실제로 의료계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제를 깨뜨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먼 훗날 이 시도가 어떤 결과로 발현할 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가까워 보인다.
권리보다 규제가 더 큰 면허를 누가 취득하려 싶을 것이며 누가 유지하려 할 것인가.
기우일지 모르지만 의료계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지속된다면 대부분 의사들은 환수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피했던 '그 의사'처럼 갈수록 '쫄게'될 것이다.
의사면허가 가지고 있던 묵직한 중량감도 차츰 가벼워질지 모른다.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결여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차마 가운을 벗지 못한 의사들은 양심적인, 교과서적인 진료보다는 규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진료를 보게 될 것이고, 국가와 사회는 의사들에게 그 책임을 돌릴 것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료 역시 그래야 하고 진료와 관련된 법과 규제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의사들은 환수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 하나에 벌벌 떤다. 진료에 대한 의사로서의 소신을 묻는 질문에 쫄아버린다.
누가, 무엇이 그 의사를 떨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