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대한민국 교육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교육에 대한 불신의 골은 날로 깊어져 간다. 학원이나 과외의 형태로 등장한 사교육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시장 중에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기러기 아빠 현상으로 등장한 조기 유학도 이제는 흔한 일이다. 많은 가정에서 가능하다면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자녀를 탈출시키고자 한다. 오명으로 얼룩진 공교육은 정권이 바뀌고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 정책을 매번 갈아엎었다. 원칙이 없는 정책 방향은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더 큰 불안만 키워가고 있다.
최근 자율형사립고 존폐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2007년 고교 다양화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자사고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실시하며 학교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준다. 학교 간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게 설립 취지였다. 그런데 이제는 우수 학생들이 자사고로 몰려 일반고의 '교실붕괴'가 시작 되었으니 그 악순환을 끊겠다고 한다. 한 때 공교육의 적으로 매도되었던 특목고는 이제 그 죄목을 자사고에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정작 상위권 학생들이 더 많이 몰리는 특목고는 놓아두고 자사고만 폐지 하겠다는 논리가 궁금하다. 교육의 자율성을 거두어 갈수록 교육의 질 저하는 불가피 한 것이다.
공교육 불신의 역사는 1974년 도입된 고교평준화에서 출발한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과중한 학습 부담, 경쟁의 과열과 학교 간 학력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각 학교에서 학생을 자율적으로 선발하지 않고 추첨을 통하여 학생이 속한 학군별로 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교육과 출세 욕구는 억압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교 평준화 정책 이후 사교육 시장이 점차 커져나갔다.
이후 1980년 과외 및 사교육 금지와 대학 본고사 폐지를 골자로 한 '7ㆍ30 교육개혁'이 시작되었다. '7ㆍ30 교육개혁'은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가장 역점을 두었던 과외금지 조치로 인해 오히려 '고액과외', ‘쪽집게 과외’가 성행하면서 상류층 사교육의 명성을 높이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눈에 보이는 과외는 근절되는 듯 했지만, 경쟁을 없애고 평준화된 교육이 강조되니 음지에서 사교육 시장이 출현하였다. 이후 점점 세를 불려오던 사교육 시장은 다시 합법적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고,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 중에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평준화를 강조할수록 소위 강남 8학군으로 대표되는 명문 학군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 성취도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평준화 정책이 교육 격차를 더 넓히게 된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자사고 존폐 문제도 그렇다. 일반고에 더 많은 자율성을 주고 일반고 수준을 끌어올릴 정책을 고민을 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육 정책은 교육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북돋아주고 뒤처지는 학생은 끌어주는 게 교육 정책의 역할이다. 공교육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의료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포괄수가제, 진료비 삭감 등을 비롯하여 의료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각종 정책과 규제들이 대한민국 의료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 획일적인 저비용, 저보장 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비급여가 도입되었고, 점차 급여화로 전환되어감에 따라 생존을 위해 새로운 편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영리 자회사'와 같은 비정상적 경영체계를 동원하여 강제적으로 연명치료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보험과에 염증을 느낀 의사들은 비보험과로 몰리기 시작했고, 비보험과도 서서히 과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의대생 중에서 대한민국의 의료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려 외국의사면허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두뇌 유출 문제는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인 유인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진료자율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료의 자율성이 제한되어감에 따라 의료의 질 저하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양질의 의료를 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가령, 환자가 포괄수가제 하에 치료를 받았다. 치료받은 환자는 혹시 병원에서 저가 의료기기나 의료 소모품을 재사용하지 않았는지, 괜히 합병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든다. 돈이 더 들더라도 최선의 의료를 받고 싶은 환자의 권리를 의사와 병원이 무시하는 느낌이 들고 불쾌할 것이다. 이러한 불만들이 점차 적체되고 확산되고 있다.
지금도 질 관리를 위해 의료기관 평가제와 같은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의료기관 평가를 대중에 공개하여 병원 간 경쟁을 유발하고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의료제도는 교육 정책 이상으로 자율성이 제한되어 환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너무나 쉽게 과잉진료로 매도되고, 의료인의 주관이 의료비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한 의료의 질 향상은 요원한 일이다. 하향평준화로 대표되는 현재의 획일적인 교육제도 하에서 교원평가제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의 질 하락이 지속된다면 이미 비탈길을 걷고 있는 일부 진료과에서는 진료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외국인 의사를 수입하기도 어려운 여건이기 때문에, 간단한 처치로 끝낼 수 있는 병을 키워 해외로 나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하향평준화로 사교육이 태동하였듯, 현 세태가 심화될수록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민간보험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이고, 이 요구는 대기업이나 보험회사의 요구가 아닌 상류층의 자생적 요구가 될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의료보험 민영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의료보험 민영화'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의료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관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에 맞는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관치가 정치적, 예산 문제로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포퓰리즘적 방향을 가진 관치라면 더더욱 힘들다. 의료 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 보험료 상승이 불가피하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후세대에게 어떤 모습의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인가. 자랑스러운 의료제도와 교육제도를 내세울 수 있는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