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가까이 계시면서 깊은 뜻과 넓은 마음으로 저희를 헤아려주시며 엄정한 학문의 길을 깨우쳐 주시던 선생님께서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고 이제 선생님의 영전에 서니 슬픔을 참을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든 제자와 후배들의 畏敬을 받아오신 ‘큰 스승’이셨습니다.
우리나라 내과학, 핵의학, 내분비학, 혈액학 등을 이끌어 오신 학문적인 성취나 대한의학회, 전문의 교육 수련제도, 의료인 국가고시 등 제도적인 기반을 정립하신 일, 아시아 대양주 혈액학회와 핵의학회, 그리고 국제혈액학회의 유치와 같은, 밖으로 드러나는 업적도 많지만 선생님께서 제자와 후배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스스로에게 학문적으로 엄격하셨던 것이 선생님을 그 보다 더 ‘큰 스승’으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제자나 후배들도 지금 선생님의 보살핌과 배품을 다시금 느끼고 있겠지만 저는 처음 내과에 입국한 이래로 선생님을 모셔 온 4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보살핌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하시고 해결하여 주신일, 저를 나무라신 후 제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으면 댁에 가시기 전에 꼭 들려서 격려하여 주신일, 못난 저를 위해 저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서서 대한의사협회의 학술상을 받도록 추천하여 주신일, 그리고 몇년전 제가 학장으로 선출되고 선생님께 제일 먼저 전화를 올렸을때 너무도 기뻐하시며 격려하여 주시던 일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생각나며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과 함께 하였기에 더욱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추억으로 제 가슴 깊이 영원할 것입니다.
평생을 시간이 나기만 하면 공부하시고 연구모임에서는 항상 저희들이 빠뜨린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여 주셨으며, 감히 저희들로서는 엄두도 못낸 연구과제들을 제시하고 이끌어주시어 결국은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그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구충(鉤蟲, 십이지장충)에 의한 빈혈의 기전을 연구하시며 鉤蟲卵을 드시고 직접 빈혈을 몸소 겪으시며 연구하시던 모습은 저희가 어떠한 마음으로 학문에 임해야 하는지를 일깨우신 일입니다.
해외학회에 연제를 발표하러 다녀 오시면서도 한번도 빈손으로 오신 적이 없어 새로운 연구방법이 개발되면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는 구할수도 없던 시약을 외국의 학자들로부터 얻어 저희가 뒤처지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무려 14권의 의학 전문서를 집필하시면서도 원고를 쓰신 후 하나하나 최근 문헌과 비교 검토하시고 퇴고를 수차례 하신 후에야 비로소 출간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학자로서의 열정은 얼마 전까지도 지속되어 항상 책을 가까이 두시고 공부하시며 새로운 의문을 떠올리시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평생토록 잠시도 쉬지 않고 학문과 일에 열중하시던 선생님.
엄하시지만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저희들을 바라보셨던 선생님께서는 이제 떠나셨습니다.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선생님의 모습과 뜻이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셨던 ‘함춘원’에 영원히 남아있고 저희들이 선생님을 기리는 마음도 그곳에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제 선생님을 잃은 슬픔을 딛고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남긴 고귀한 뜻을 이어가고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후배들에게도 전하겠습니다.
선생님 고이 잠드시고 편안히 쉬시옵소서.
제자 李正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