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에 위기는 한 두 해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벌써 몇 년째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는 기초의학 대학원의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의대생들의 기초의학 외면 현상을 더욱 극심하다. 최근 기초의학의 중요성이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기초의학은 국민, 정부뿐 아니라 의료계에서조차 찬밥 신세다. 메디칼타임즈는 기초의학의 열악한 현 실태와 대안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텅빈 기초의학교실
②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
③ 새로운 대안 찾아라
--------------------------------------------------------------------
A씨는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모대학에서 예방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과 동기들은 의대 6년을 마치고 대부분 수련의 과정을 택했지만 그는 의외의 선택을 한 셈이다.
그는 현재 3년차이지만 1, 2년차 전공의는 1명도 없다.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는 탓이다.
그는 “다른 기초의학에 비해 예방의학을 전공하면 선택의 폭이 그나마 넓은 편이지만 지원자가 없다”면서 “다른 대학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기초의학, 지원자가 없다
전북대학교 의대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기초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의대졸업생은 겨우 4명이다. 약리학교실, 해부학 교실, 예방의학교실, 병리학 교실 각각 1 명이다. 해부학 교실의 경우 2003년 들어온 한 명외에는 지난 9년동안 지원자가 1명도 없었다.
이같은 상황이 이 학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이 심각한 기초의학 전공자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경북의 A의대 해부학교실은 교수 3명, 정규직·계약직 연구원이 각각 1명만이 있다.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것이다. 물론 지원자가 없는 탓이다. 부산지역의 B대는 기초의학 전공자 중 의대 출신이 1명이었다.
전남의대는 병리학과 예방의학을 제외하고는 기초의학교실 전공자가 1명이다. 가톨릭 의대의 경우 기초의학 전공자가 총 6명이다. 다른 학교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의대도 다르지 않다. 전공의 과정을 두고 있는 임상병리를 제외하면 지난 90년부터 2000년까지 기초의학 전공자가 20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의대 생화학교실 김전 교수는 "기초의학교실에서 후학을 양성하지 못하는 현실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기초의학교실에는 생물학과 같은 자연계 전공자가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부산의 B의대의 해부학교실의 경우 12명 ~ 13명의 대학원생들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자연계 출신이다.
이와 관련 원광의대 정헌택 교수는 매년 의대 졸업생 중 대학원을 진학해 기초의과학을 전공하는 인력이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2001년도 통계를 보아도 기초의학전공자가 41개 의과대학에서 총 30명에 못 미쳤다.
기초의학회도 정체, 침체
이 같은 기초의학 전공자의 부족에 따라 관련 학회도 울상이다. 벌써 몇 년째 회원 수가 정체인 학회가 수두룩하다.
대한예방의학회의 경우 1000여명의 회원 중 수련과정을 거치고 있는 전공의는 25명에 불과하다. 예방의학 전공의 과정이 3년이고 전국 의과대학이 41곳 인 것을 감안하면 한 학교에 한명도 못 채우는 꼴이다.
예방의학이 의료관련 정책적 조언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수치다.
대한병리학회의 경우 병리학을 전공하는 수련의가 70여명 정도이다. 최근에 들어온 1년차가 30여명, 2년차는 16명, 3년차는 9명, 4년차는 15명 정도이다. 학회 관계자는 “의약분업 직후 전공의 숫자가 대거 줄었다가 최근 다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생리학회 관계자는 “신규 회원인 대학원생의 증감의 폭이 적어 회원 수가 400여명에서 줄거나 늘거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초 의학 전공자 수의 감소는 교수 수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도이다. 기초의학 교수의 부족현상은 이미 널리 알려졌으며 일부 신설의대에서는 기초의학의 강사가 없어 타 대학에서 강사를 초빙해 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이같은 현상은 의대 내의 비 의사출신 교수의 비율을 비교해봐도 그러하다. 2002년 전공에 따른 교수 수를 보면 생리학의 경우 전체 의대 교수 142명중 의사교수는 93명이었고 비의사 교수는 49명이었다.
미생물학은 145명 중 의사 교수가 93명, 해부학은 151명중 의사 교수가 91명이었다. 생화학-분자생물학의 경우 150명의 교수 중 78명의 의사 출신이었고 72명은 비의사 출신이었다.
결국 현재 1,200여명으로 추정되는 기초의학 전문인력 수는 미국 14,000명, 일본 7,000명 등과 비교해 볼때 턱없이 모자라는게 현실이다.
미래·현실 모두 불안 ‘이중고’
기초 의학 지원자가 없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경제적 요인 등을 먼저 지적한다.
전북의대 송창호 교수는 “기초의학 교수가 되더라도 임상 교수나 개업의에 훨씬 못 미치는 경제적 대우를 받는다”며 “이러한 요인이 지원자가 없는 일차적 요인이다”고 말한다.
이는 대학원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임상 수련의는 월급을 받게 돼지만 대학원 과정은 그렇지 않다. 의대 6년에 이어 다시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의 경제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일부 의대는 전공의와 같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일부분이다.
기초의학 붕괴의 원인으로 사회적 분위기와 의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원광의대 정헌택 교수는 “학생들이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자기 인생에 관한 결정을 하는 교육이 부족하다”면서 “기초의학 보다는 남들이 가는 길이나 친척의 권유에 의해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래에 대한 보장도 마땅치 않다. 의대 졸업자중 기초의학을 지원하는 상당수는 기초의학 교수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 박사 학위를 따더라도 연구원이나 직장을 잡을 만한 토양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의대 출신 대학원생인 K씨는 “학교의 교수 T.O를 보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고, 교수 T.O 때문에 학교를 옮기거나 학교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의대 김진 교수는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부담감, 연구와 교육을 병행해야 하는 점. 의사로서의 상대적 빈곤감 등이 사기를 저하시킨다”며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 역시 이런 상황이 눈에 보인다”며 “그러다보니 아무도 지원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