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일원화와 한의학 과학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와 같이 한약이 유통된다면 10년 이내에 한약업계가 퇴출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또한 한방 과학화는 시대적 과제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서양의학 편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의학계에서 제기됐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12일 ‘한국 한의약의 미래와 전망’ 포럼을 열어 한방의 발전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날 보건복지부 김주영 사무관은 발표를 통해 “지금과 같은 한약 형태가 지속된다면 10년 이내에 한약업계는 저절로 퇴출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김 사무관은 불투명한 유통구조와 소수가 지배하는 유통업계 역학구조, 공급자 위주의 법적, 제도적 장치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약은 사회로부터 추방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경희한의대 이종수 교수는 2000년 이후 의료계와 한의계간 대립이 본격화됐으며, 이는 국가의 조정 역할 부족, 의학적 관점의 한의학 검증을 통한 말살 시도, 한의학에 중의학적 변증이론과 용어 남발로 인한 정체성 모호 등에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는 “21세기 사회는 과학적 방법을 필수로 여기기 때문에 한의학도 이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의학의 과학화가 학문의 정체성을 쇠퇴하게 하고, 급속한 서양의학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경원한의대 이충렬 교수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중국의학의 과학화는 현재의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CM)을 과거의 중국의학과 전혀 다른 의학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차이 때문에 이들 두 의학을 분리해 단절된 것으로 파악하려는 학자들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시각은 한의계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실험적 방법을 위시한 과학과 서양의학으로부터 빌려온 연구 방법론은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기존의 전통 한의학과 따로 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한의학의 정체성 문제도 계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지금 한의학의 과학화는 주로 침구나 약물의 질병치료 효과와 기전을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하고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그간 한의학적 치료와 효능을 설명하고 지지해왔던 한의학 이론이나 개념을 비과학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앞으로 이런 방면의 연구가 계속돼 연구결과가 축적된다면 한의학 이론과 개념은 점점 설자리를 잃고, 학문적으로 도태될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이 교수는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된 내용들은 서양의학 체계로 편입돼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기여하게 되며, 결국 서양의학은 한의학을 통해 다양한 치료 수단을 확보하는 반면 한의학은 급속히 서양의학화해 정체성을 잃고 쇠퇴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한의학의 정체성은 한의학 고유의 인체에 대한 대상관과 음양오행과 같은 방법론으로부터 나온다”면서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 없어지듯이 한의학이 한의학만의 고유한 관점과 이론을 잃으면 더 이상 한의학이 아니다”면서 정체성 확립 필요성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