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약국의 불법 조제·진료행위현장 고발
의약분업이 시작한지 3년이 지난 지금, 처음 분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잘못된 조제행위로 인한 약화사고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실제 불법적 조제행위가 사라진 탓인지, 아니면 언제나 잘못된 조제행위로 인한 약화사고의 위험성이 잠재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메디칼타임즈(www.medigatenews.com) 의료팀은 지난달 26일부터 2일까지 수도권 도심과 비도심의 약 60여 곳의 약국들을 찾아다니며 약업가의 실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관절염약은 여행상비약?
지난달 29일 오후 4시경, 대학가가 밀집한 서울의 S약국.
서른 평 남짓한 약국에 들어섰을 때 환자 서너 명이 약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기자는 박카스를 사기 위해 줄 뒤에 붙어 섰다.
잠시 후 건너 편에 줄을 서있던 정 모씨(59, 여)가 약국직원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내일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갑자기 설사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정 씨의 손에는 처방전이 들려있지 않았고 직원 역시 처방전이 있는지, 혹은 병원에 가 보았는지 묻지 않은채 “얼마나 되었냐?”, “심하지는 않냐?”는 질문들을 던졌다.
그리고는 파란색 포장의 약을 손에 든 채로 “일단 식후에 이 약 먹고 여행가서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플 테니 관절염 치료제도 준비하고 소화제, 피로회복제도 챙겨가는 게 어떻겠느냐”며 구매를 권하기 시작했다.
잠시 주저하던 환자는 결국 주는 약들을 모두 사들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약값이 비싸니 피로회복제를 L비타민제로 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재차 “긴 여행할 때 피로회복제는 필수품”이라며 환자를 설득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거 신경성 두통입니다”
영등포구에 사는 강 모씨(26 남)는 두통에 심하게 시달리다 종로구의 G약국을 찾았다.
병원을 찾아갈 시간이 없었던 강 씨는 마침 눈에 띄는 약국이 있기에 들렀다.
그는 “가끔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고 약사에게 말했고 약사는 “어디가 주로 아프냐”, “어떻게 아프냐”고 묻더니 말했다.
“그거 신경성 두통입니다.”
그리고는 '일이 힘드냐', '집안에 걱정이 있느냐'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낸 후 약병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는 '○○정'이라고 쓰여 있는 조그만 병들이 5개 놓여있었고 약사는 그 뚜껑들을 하나하나 돌려 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른 양약포장을 풀더니 그 병 속에 그것을 각각 2알씩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약사법 39조는 일반의약품이라 하더라도 약을 개봉해서 판매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일단 1알 먹어보고 이상 없으면 2알씩 드세요”
1일 오후 5시경 서초구의 L약국에 한 30대 여성이 들어섰다.
그녀는 “집 근처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이라면서 “전에 먹던 변비약을 사러왔다”며 처방전을 꺼내 놓았다.
그러나 약국 직원은 “처방전에 있는 약의 성분과 같은 약이 있는데 이 약이 더 잘 들을 것”이라며 환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환자는 곧 직원의 말을 수긍했고 직원은 약을 처방한 병원에 연락조차 하지 않은 채 약을 조제하고 그것을 건네주며 말했다.
“일단 1알을 먹고 나서 1시간이 지난 후 아무 이상이 없으면 식후 두 알씩 복용하세요"
이것이 '묻지마 조제'?
2일 오후 2시경 경기도 부천시 L약국에 김 모씨(77 여)가 지팡이를 들고 약국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약국 직원과 잘 아는 사이인지 들어서자마자 “약이 다 떨어졌어”하며 손을 내저었다.
직원은 “아직도 무릎이 많이 아프세요?”하고 물었고 할머니는 “조금 나아졌어”하시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직원은 할머니에게 병세나 처방전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이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커다란 약봉지를 사들고 약국을 나서는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사가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순순히 약봉지를 열어 보였다.
약은 15일 분량이었으며 하루 3포씩 45포가 각각 조제돼 있었다.
할머니께 부탁해 그중 1포를 얻어다 내용물을 확인해 본 결과 1회 복용분량 안에는 진통소염제 2알, 타이레놀 2알, 소화제 1알, 위벽보호제 1알이 들어있었다.
일상 깊숙히 파고든 불법 조제·진료행위
'팜파라치'에 대한 경계 때문인지 한 약국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가 없었고 방문한 약국수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상의 사례들을 무작정 모든 약국들의 경우로 확대해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몇 차례 안 되는 짧은 기간의 조사를 통해서도 이상과 같은 불법적이고 어이 없는 상황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약국들의 불법적 조제 및 진료행위들이 국민들의 일상 깊숙히 파고들어와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 약국들의 광범위한 불법적 조제 및 진료행위들이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의약분업의 기본적인 취지까지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