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어디라고 환자가 있으면 배치되는 공보의.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찾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외지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공보의를 찾아가 봄으로써 그들의 생활을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해볼까한다. <공보의를 찾아서>는 매주 월요일 연재된다. - 편집자주 -
2004년 7월 문을 연 최초의 외국인노동자 상시진료기관인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원장 이완주)이 만 3년이 얼마남지 않았다. 지난 3년동안 재정악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지만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여기까지 온 데에는 당당히 공중보건의사들의 노력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2005년 공중보건의사 파견기관으로 선정된 이후, 4명의 의사들이 외국인노동자 진료에 매진해 왔다.
현재는 3명의 공중보건의사가 제대하고 황호경 공보의(34, 외과)만이 새로운 의사들을 기다리며 환자들과 부대끼고 있었다.
"외과 트레이닝 당시 내과 선배가 외국인노동자 진료소가 있다고 가자고 했었지만, 일주일에 한번 집에 가는 상황에서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외국인노동자진료소에 공보의 T.O가 나면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것도 그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택하게 된 큰 이유라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그의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TV에 소개되는 사연처럼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드라마틱한 환자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산재나 직업병에 의한 환자가 대부분일거라는 것은 편견. 제3국 노동자보다 조선족 교포들이 많이 방문한다.
그렇다고 안타까운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족 할머니였는데 아들인 심발작으로 식물인간이 됐고, 할머니 역시 병수발 중 검사해보니 유방암이어서 수술해 결국 아들과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누워있게 됐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할머니는 유방암 1기여서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고, 남도 지방에서 미역을 따다 손이 곪았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해 서울까지 와서야 겨우 치료를 받은 사연. 확연히 딱딱한 것이 느껴질만큼 유방암인데도 병원을 찾지 않다가 외국인 진료소에서 암을 발견하고 수술받은 필리핀 여성의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고.
무료 진료(외래)이다 보니 내시경이니, 초음파니 필요치 않은 검사를 요구하는 환자도 없지 않다. 그는 "무료이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의료혜택이 못 갈때도 있다"면서 "무료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출발 당시에는 일반 보험수가의 80% 정도의 치료비를 받았지만, 결국 무료화했다.
그는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에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의료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직장을 자주 옮기는 상황에서 의료보험이 없는 노동자가 적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계속 무료로 치료해주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료보험에 가입 시켜서 사회의 일원으로 의무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동력이 없거나 안타까운 분들에게 의료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
황호경 공보의는 현재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운영될 수 있는 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크다고 했다. 특히 의사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최근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친 정형외과 공중보건의사는 아직도 매주 두 번씩 이 곳을 찾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그는 "꾸준히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면서 ""매주 목요일 친구끼리 돌아가면서 오는 이비인후과 의사들, 그리고 마취과, 피부과, 신경과 등 많은 의사들이 꾸준히 봉사하러 온다"고 말했다.
그는 2년간의 근무에 이어 마지막 1년도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황 공보의는 그 이후에도 선배 자원봉사의사들의 행렬에 동참하게 되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