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끌어오던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이 국회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 기금 마련 등 의료계의 의견들이 상당부분 배제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9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의원회에 회부되어 있던 3건의 관련 법안(이기우, 안명옥 의원안 및 박재완 의원 청원안)을 병합심의,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했다.
일단 법안의 명칭은 '보건의료사고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으로 정해졌다.
법안소위 위원들은 당초 의료사고 대신 '의료분쟁'을 법안의 명칭에 넣는 안도 고려했으나, 분쟁이라는 의미가 명확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법안을 명칭을 이 같이 확정했다.
법에 명시할 의료사고의 정의는 '보건의료인 등이 보건의료기관에서 환자 관리 및 환자에 대해 진단·검사·치료·의약품의 처방 및 조제 등의 행위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명·신체 및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로 규정됐다.
입증책임 주체 '환자'에서 '의사'로...분쟁조정 중 소제기 가능
대안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핵심쟁점이었던 의료사고에 책임문제는 결국 환자에서 의사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의료소송시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인이 사고 당시 자신이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지 않았다는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한 것.
소위 위원들은 "의료소송이 다른 손해배상소송과 달리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하는데다, 증거가 의사측에 편중되어 있는 측면이 있어 일반인의 입장에서 피고의 과실여부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입증책임을 전환할 경우, 소송을 하면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환자들의 의료소송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울러 소송절차와 관련해서는 분쟁중재기구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소제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임의적 조정 전치주의'가 채택됐다.
당초 소위는 분쟁중재기구를 통한 당사자간 합의절차를 반드시 거친 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적 조정 전치주의'도 검토했으나, 이 경우 사건의 해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특히 중재 후 소제기시 피해자가 이중부담을 겪어야 한다는고 판단, 이 같이 정했다.
형사처벌 특례 제한적 인정...무과실 기금조성은 '삭제'
한편, 관심을 모았던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는 '업무상 경과실'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의사에 대해서만 특례를 두는 것은 타 직종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을 수렴한 것.
앞서 이기우 의원의 안은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경우라도 종합보험등에 가입된 경우에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제기를 할 수 없도록(반의사 불벌죄), 안명옥 의원안은 이보다 더 나아가 아예 치상죄에 대해서는 공소제기를 할 수 없도록 했었다.
그러나 소위는 이 경우 산업현장의 위험업무종사자 등과의 불평등 문제를 초래할 수 있고, 중과실과 치사죄에까지 면책특권을 주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업무상 중과실과 치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항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 밖에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및 보상기금 조성도 법 규정에서 제외됐다.
당초 소위에 제출된 안들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책임을 국가에 두고, 무과실 의료사고 발생시 국가가 보상한도 내에서 피해자에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 했었다.
아울러 이 비용 마련을 위해 국가와 보건의료기관개설자, 보험자업자등이 재원을 분담해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기금을 조성하도록 정했다.
이에 대해 소위는 "의료분쟁은 의사와 환자간 민사상 문제로 국가에서 이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과실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이들 규정은 삭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