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가 10월부터 요양시설 입소자의 경우 의사가 왕진을 하더라도 수가를 원천 불인정하기로 하자 노인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 세부사항’ 개정안을 예고하면서 장기요양기관에서는 의사가 왕진을 하더라도 왕진료를 산정할 수 없도록 했다.
장기요양기관이 아닌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는 질병, 부상, 출산 등으로 보행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하면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왕진을 할 수 있으며, 왕진 의사는 이에 따른 진찰료와 진료료를 공단에 청구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와 별도로 환자는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범위에서 기타 비용(교통비 등)도 전액부담으로 의사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가 이 같은 개정안을 발표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모장기요양시설 촉탁의로 지정된 C요양병원 원장은 “이는 요양시설 입소노인들의 진료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촉탁의가 정기적으로 요양시설 입소노인들을 진료하지만 모든 과 진료를 다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환자에 따라서는 불가피하게 의사가 왕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해당 진료비를 산정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촉탁의나 협력의료기관 의사가 아니면 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요양시설 촉탁의의 진료를 대폭 축소한 상황에서 왕진까지 봉쇄하면 노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복지부는 과거에는 요양시설 촉탁의가 의무적으로 주 2회 이상 입소노인들을 진료하도록 했지만 지난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이후 2주에 1회로 진료를 대폭 축소시켰다.
그는 “요양시설 입소노인의 절반 이상이 거동이 불편한 요양 1, 2등급 판정자인데 촉탁의 진료를 축소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는 것은 그야말로 노인들을 의료사각지대로 내모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맹비난했다.
좌훈정 의협 전 보험이사도 이번 개정안의 문제를 조목조목 따졌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면 건강보험법에 따라 정해진 수가를 받을 수 있는데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라고 해서 수가를 불인정하는 근거가 뭐냐”면서 “비급여 항목인 왕진료마저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은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이번 개정안은 촉탁의나 협력의료기관 소속이 아닌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에 의해 왕진을 가야 하더라도 왕진료를 받을 수 없으니 현실적으로 가지 못하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며 “의료계는 총력을 다해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장기요양시설은 촉탁의나 협력의료기관의사에 의해 건강관리가 이뤄지고 있고, 시설내 처방전 발행이 가능해 별도의 왕진료를 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견해다.
복지부 관계자는 “촉탁의나 협력의료기관의사는 요양시설 노인들을 성실히 돌볼 의무가 있고, 별도의 진료가 필요하면 병원으로 전원해 진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특히 복지부는 요양시설 왕진료를 인정하면 제도를 남용할 소지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요양시설 왕진 의사가 진료를 요청한 환자 이외에 다른 노인들까지 진료하고 왕진료를 청구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남용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일시적으로 건강보험재정이 흑자이긴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일부 불편이 따르더라도 보수적인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