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골반통 치료의 대가이자 상담을 오래하기로 유명한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허주엽(산부인과) 원장이 오전부터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외래진료를 해 병원 직원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다.
동서신의학병원 허주엽 원장은 지난 19일 오전 9시 30분 외래진료를 시작해 자정을 넘긴 12시 30분이 돼서야 마무리했다.
그는 진료가 너무 늦은 시간에 끝나다보니 귀가도 포기한 채 병원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기도를 가야 하는데 귀가해봐야 바로 나올 수밖에 없어 이렇게 한 것이다.
허 원장이 이 시간까지 진료를 하는 것은 만성골반통 환자들이 물 밀듯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만성골반통 진료의 대가이다보니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는데다 최근 EBS 명의 편에 소개된 후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지금 진료예약을 하면 내년 초에나 진료가 가능할 정도다.
여기에다 허 원장은 초진환자가 내원하면 1시간 이상 상담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만성골반통은 증상이 모호하고 원인이 다양하다.
정신적인 원인이나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자궁의 비정상적인 수축이나 자궁과 자궁 주위 혈관에 혈액이 정체돼 역류하는 골반울혈 증후군이 만성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게 허 원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에 전문가가 전무하다보니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지만 치료가 잘 되지 않고, 몇년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허 원장은 만성골반통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고부 갈등, 남편과의 불화 등 환자들이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가슴 속에 묻어둔 얘기를 모두 들어준다.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는 환자들도 허 원장을 마지막 구원자로 생각하고,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고 간다고 한다.
그가 진료하는 날이면 문전 약국도 비상이다. 통상적인 외래진료는 늦어도 오후 5시 30분이면 끝난다.
하지만 허 원장은 빨라야 오후 10시에나 마치다보니 그가 오후 진료하는 월, 수, 금요일이면 문전약국도 11시를 넘겨서야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허 원장의 진료가 비급여 대상인 것도, 장시간 상담을 한다고 해서 별도의 수가가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한시간을 진료하든, 3분을 진료하든 수가는 동일하다.
허 원장은 24일 “다소 힘이 들지만 만성골반통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심하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들이 많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환자는 많고, 진료대기가 점점 길어지자 그 역시 환자 상담시간을 줄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허 원장은 이마저도 단념한 것 같다.
그는 “요즘에는 상담시간을 좀 줄일까 생각하지만 환자들의 가슴 속에 쌓인 게 너무 많고, 고통이 상상 이상”이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다 들어주면서 원인과 치료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허 원장의 환자사랑은 만성골반통환자들의 카페인 ‘나비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환자는 “허 원장이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까지 외래환자 예약이 된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무엇보다 진료를 받은 후 속이 시원해지고 그동안 쌓였던 게 다 풀리는 것 같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감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