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남녀들은 주어진 업무에 충실한 반면 이혼, 실직 등 급격한 변화에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소장 이동수)가 최근 한국인 성인남녀 199명을 심층 면담해 자아정체감을 분석한 결과 4명 중 3명이 정체성 폐쇄 지위 증상을 겪고 있었다.
연구결과 안정지향적이며 현실순응형이지만 위기에 약한 '폐쇄군'이 74.4%(148명)로 가장 많았으며 능동적이고 진취적 개척자형인 '성취군'이 12.6%(25명)로 두 번째로 많았다.
또한 수동적이며 무기력한 방관자형인 '혼미군' 10.6%(21명), 고민이 많은 대기만성형인 '유예군'이 2.5%(5명) 순이었다.
연령대별로 자아정체감의 발달 수준을 탐색한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폐쇄군은 높아졌다. 즉,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헌신도는 높아지지만 탐색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반면 나이가 젊을수록 혼미군이 증가했는데 이는 젊을수록 자아정체감이 덜 정립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학력이 높을수록 성취군이 많고 폐쇄군이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즉, 성취군이 중졸 이하의 경우 전무했으나 대학원졸 이상은 41.2%로 조사됐으며, 폐쇄군은 중졸이하가 80%로 높은 반면, 대학원졸 이상은 52.9%에 불과해 학력에 따라 정체감 형성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자아정체감이 취약한 사람들은 평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뚜렷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스트레스를 높게 경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실직이나 이혼 등으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되면 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OECD 자살율 1위, 양주 소비율 1위와 같은 한국 사회의 사회병리적 현상들이 이와 같이 한국인의 자아정체감과 관련 있다는 것.
또한 폐쇄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체면이나 명분, 서열을 지나치게 따지는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동수 소장은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집단의 목표가 강조되고, 개인의 희생이 요구되면서 자아정체감이 성숙되지 못한 것이 이러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