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국회통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의료사고법이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24일 회의를 열어 이 법안에 대한 심의를 벌였지만 형사처벌 특례 조항,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보상등 일부 조항의 적절성 논란이 일어 의결이 보류됐다. 이에 따라 의료사고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사고법이 통과되기만을 학수고대했던 의료계는 큰 실망감과 함께 이번에도 불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우리사회는 그간 의료사고법 제정을 두고 지루한 논쟁을 벌여왔다. 이번에 국회에 상정된 법안도 오랜 진통 끝에 마련된 것이었다.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삭제되었고 형사책임특례 및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보상 등 조항이 포함되어 시민사회단체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이번에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힌 것도 시민사회단체의 끈질긴 문제제기와 국회의원 설득의 결과로 풀이된다. 의료계도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힘에 부친 모양이다. 우리는 의료사고법이 의료인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시민단체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조항들은 의사들의 방어 진료를 막아, 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토대가 될 것이란 생각도 갖고 있다.
모든 의사들은 하루하루 의료사고의 부담 속에서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 한번 터지면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산부인과와 외과계열의 경우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포기하고 다른 영역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만원도 안 되는 분만비를 받으면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 보다 피부미용, 탈모 등의 분야를 진료하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형병원들은 아예 새해 예산을 짤 때 의료사고 피해보상금을 명목으로 수십억 원을 별도로 책정해 둘 정도라고 한다.
경만호 의사협회장은 각 시군구 의사회 총회에서 의료사고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한다. 이번 참에 의사협회가 정치력과 논리력을 바탕으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라면 한발 양보하는 미덕도 보일 필요가 있다. 의료사고의 당사자는 의사와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똑같이 고통 받는 입장인 만큼 그에 따른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의료사고법이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 빨리 입법화되기를 모든 의사와 환자들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