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의사가 명의만 빌려줬더라도 병원의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 1부는 최근 검사료를 받지 못한 병리검사 수탁기관이 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A의사를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수탁기관의 손을 들어줬다.
9일 판결문에 따르면 의사 A씨는 B씨에게 수수료를 받고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명의를 빌려줬다.
하지만 B씨는 의료기관의 병리검사를 수탁하던 회사에 820여만원의 검사료를 주지 않았고 결국 이 회사는 A씨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의료기관의 대표자로 등록돼 있는 만큼 밀린 검사비를 물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자신은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고 실질적인 사업주는 B씨인 만큼 자신이 밀린 검사비를 물어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기관 대표자로 등록돼 있는 만큼 채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검사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업체가 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누구인지를 알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연히 의사인 A씨를 사업주로 오인해 거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수탁기관은 원장이나 사업주와 마주친 일이 없고 병원 직원에게 전화를 받고 위탁업무를 진행했다"며 "수탁기관이 사업주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과실이라는 의사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따라서 명의를 빌려준 A씨는 밀린 검사비를 물어줄 의무가 있다"며 미지급 검사료 822만원과 지연배상금을 배상할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