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의무이사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통해서 바라 본 '의료생협의 의료기관 개설 운영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지난 2010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제정된 데 이어 올해 1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돼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어 현재 인가를 얻어 운영 중인 의료생협은 물론 앞으로 신설될 의료생협의 향배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에는 개별법에 의해 농협 등 농수산업·소비·금융 분야의 일부 협동조합의 설립만 가능했으나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과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으로 인해 각 분야에서 다양한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게 됐다.
협동조합 활성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지나친 영리추구행위는 협동조합 활성화를 통한 사회적 기대감을 저버리는 것이며, 또 다른 형태의 대기업 또는 독점기업이 등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근거로 의료기관을 설립해 환자유인 행위 및 허위청구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의료생협의 폐단에서 보듯이 의료기관이 영리를 목적으로 할 경우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합법을 가장한 탈법적인 사무장병원 개설 창구로 악용되고 있으며, 돈벌이에만 급급한 이들 의료기관들의 영리추구 행위와 탈법적인 행위가 의료서비스의 질 지하로 이어져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고 있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에'협동조합기본법'을 통해 의료생협의 의료기관 개설 운영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협동조합기본법 제95조(사업의 이용) 제3항에서는 '보건·의료 사업을 행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은 총공급고의 100분의 50의 범위에서 조합원이 아닌 자에 대하여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경우 공급고의 산정기준, 보건·의료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한 조합원이 아닌 자의 범위 등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서도 100분의 50 이내의 범위 내에서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를 제한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율이 60%를 넘는 곳이 약 84%에 육박해 건강보험 재정 누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기본법'에서는 벌칙규정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율을 준수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또한 협동조합기본법에서는 금융ㆍ보험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5인 이상만 모이면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서 의료생협의 설립규정을 300명 이상의 출자자와 3000만원 이상의 출자금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도록 함에 따라 우후죽순 격으로 의료기관이 개설되는 등 난립이 우려되고 있다.
나아가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은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기획재정부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이 의료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인가단계에서부터 의료사업의 범위, 회계 구조, 잉여금의 사용 등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
특히 기획재정부장관의 권한은 사회적협동조합이 수행하는 구체적인 사업 내용, 성격 등을 고려하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위임할 수 있는 바, 의료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보건복지부에게 인가에 관한 사항을 위임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첫째,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일반환자에 대한 진료를 금지해야 한다.
의료법 제33조(개설 등)는 의료기관을 원칙적으로 의사 등만 개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의료생협 의료기관은 의료법 제33조(개설 등)제2항 제4호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및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근거로 개설․운영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의료생협이 개설한 의료기관의 설립근거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 제4호가 아닌 의료법 제35조(의료기관 개설 특례)로 변경함이 마땅하다.
최근 보건복지부가'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해 설립된 의료기관에 대한 지도점검 결과 영리를 추구하거나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범위를 초과해 일반환자를 진료하는 등의 위법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의료생협은 비영리법인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조합원 및 그 가족들은 제외한 일반인을 상대로 진료를 할 수 없는 바,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이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허용 범위인 100분의 50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의 기본취지는 제46조(사업의 이용) 제1항에 의거 원칙적으로 조합원을 위하여 사업을 하는 것으로 비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사용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11조(다른 법률과의 관계)제3항에서 이 법은 조합 등의 보건의료사업에 관하여 관계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바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율이 총 공급고의 100분 50을 넘을 경우 의료법 제15조에 우선하여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율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벌칙조항 신설을 통해 요양급여비용 환수 및 요양기관지정취소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해져야 한다.
셋째, 비조합원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비조합원에 대한 진료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한 건강보험료 납부자 전체 중 납부금액이 하위 20% 범위 내에 속하는 취약계층 세대의 65세 이상 노인 또는 장애 1∼3등급 장애인과 응급환자에 한해 허용함으로서 일반진료를 최소화 하고 이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에 따른 시행령 및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제정함에 있어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의 의견수렴을 거쳐 의료생협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 개설 수단으로 전락되어 온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러한 문제를 차단할 수 있는 관리감독 방안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한 의료기관 설립이 허용될 경우 의료생협의 폐단을 그대록 답습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정부가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있다면 비조합원에 대해 100분의 50 이상 진료를 하거나, 일반환자에 대한 진료를 할 경우 전액 비급여로 처리하거나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환수조치 등을 취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법령을 시행함으로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있음을 다시 한번 주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