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
지난 달 10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임현택 회장을 탄핵시켰다. 탄핵 직후 보궐선거가 즉각 시작됐다. 후보자 등록과정을 거치고 12월 2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이번 보궐선거는 그 여느 회장 선거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필수의료패키지를 발표하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강행하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전공의들 사직과 의대생들의 휴학으로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의협회장 선거는 의사들의 선택과 바람이 녹아든, '의사들만의 잔치'였다. 지금은 대한민국 의료가 격변에 처한 상황이다. 이번 선거는 때문에 의협 회장 선거에서 ‘참정권’(參政權)을 가진 의사들이나 전공의들만의 행사가 아니다. 몇 년 뒤면 의사가 될 의대생이나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입시생은 물론 모든 국민까지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중차대한 선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는 이 당면 과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지도자가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먼저 이번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는 협회의 구성과 조직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진료과와 직군으로 구성된 의협은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특성을 명확히 이해한 뒤, 조직구성원들에게 다가가고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 속에서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 속에서 '결단'도 나올 수 있다.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 정책 방향을 협회의 지도자급 임원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의사 회원들의 '정서'도 충분히 축적돼 있다.
따라서 축적된 자료를 검토하고 연구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안하고 협상하면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이 과정에 다시금 지도자의 결정력과 리더십이 필요해진다. 지금 같은 비상시기에는 이런 지도력이 더욱 절실하다.
정책 변화 하나하나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도 직결돼 있지만, 의사 회원들, 특히 젊은 의사들의 미래도 달려있다. 과거 경험의 누적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회무를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선 이후에도 집행부 인선을 즉각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오류만 지적하면서 반대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의료정책 전반을 살피면서 필요한 경우 경제학자 슘페터의 말처럼 '창조적 파괴'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의료 환경은 매우 복잡하고 풀기 어렵다. 의료법과 건강보험법은 물론 한방(韓方)이라는 '고전적 치료법' 등이 복잡하게 얽혀 똬리를 튼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학과 한방 의료를 통일화하는 소위 '의료일원화'나 의료인에 대한 자율징계권을 의사단체에 가져오는 방법을 정부에 제시하는 것도 타협안의 하나다.
의술(의학)은 물론 경제적 상황이나 복지, 대중의 정서까지도 고려해 만들 수밖에 없는 현대 의료정책은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떼어 놓고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복잡무쌍한 생명체'이다. 그 어떤 세계적 석학의 기고문이나 강연으로도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통합적으로 생각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지도자가 보궐선거에 후보로 나서고 선출되어야 한다.
회무의 연속성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다음 집행부에 원만하게 인수와 인계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볼 수 있는 지혜와 안목, 집행부 이사들을 통솔하고 회원들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 이를 바탕으로 자체 발광하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되려는 자는 의사 집단뿐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까지 세심하게 듣고 이를 바탕으로 선택과 결정을 과감하게 내리되, 그것에 대해 겸허히 책임지려는 원칙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어쩌면 의사는 물론, 국민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론'이 현 정부에 의해 강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의료 현장을 지키는 그 모든 사람들, 더 나아가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 43대 의협회장은, 프랑스 문인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모순투성이인 대한민국 의료라는 십자가를 진 채 결코 오를 수 없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려는 현대판 시지포스의 운명을 타고난 이인지도 모른다.
일본 관서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장부승 교수는 25년간 일본의사협회장을 역임한 다케미 타로 회장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다케미 타로 회장이 확보한 '다양한 소통 창구'와 '대국민 친화적 홍보 전략'을 강조했다. 다케미 타로 회장은 다양한 정재계 인맥은 물론 의사단체 외의 다른 여러 단체와도 소통하면서 일본 의료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회원들이 잘 선택하는 것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모두의 미래가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