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면허자는 이원화 유지, 교육 일원화 주장 의협과 정면 배치 행보 의협 "한의사 이익 극대화 수단으로만 활용하려는 모습 이기적"
한의계가 혈액검사기, 엑스레이 사용을 공식화하면서 의료일원화 논의에 빨간불이 켜졌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선언하며 영역 확대에 나서는 모습은 의료일원화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협은 의료일원화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서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의협 성종호 정책이사는 13일 메디칼타임즈와 전화 통화에서 "의한정협의체가 시작될 단계에서 의학교육 일원화를 한의사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이기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이라며 "한의협은 의료일원화를 기존 한의사 영역 확대와 의사 면허권 침탈로만 생각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교육부까지 참여토록 해 의료일원화 논의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의협도 한의대 폐지 후 교육일원화를 주장하며 기존 면허자는 일원화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를 설정하고 의료일원화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상황이었다.
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의료일원화 대토론회에서 의료일원화 과정에서 기존 면허자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첨예하니 교육 통합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의협은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한다며 기존 면허자의 영역 확대 주장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국회에서 의료일원화 논의를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를 한 지 약 일주일 만이다.
추나요법 급여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위해서는 10mA의 휴대용 엑스레이, 혈액검사기 사용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추나요법과 첩약이 안전성 검증을 위해서는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게 한의협 입장이다.
성종호 정책이사는 "의료일원화는 미래세대를 위해 교육 일원화라는 큰 담론으로 가야 한다"라며 "의사, 한의사의 영역 다툼으로만 생각하면 해결이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현재 한의협의 논리대로라면 의료일원화 논의 자체를 할 수가 없다"라며 "협의가 결렬된다면 그 책임은 한의협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의협은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한의협 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의료일원화 논의에 참여한 의도가 불법적인 의과 의료기기 사용과 혈액검사에 있음을 고백했다"며 "더이상 어떤 일원화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척결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엑스레이라는 용어에만 집착...정치적 접근 삼가야"
의료계는 한의협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선언을 놓고 "황당하다"라며 의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움직임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한 임원에 따르면 한의협이 사용을 주장하고 있는 10mA의 휴대용 엑스레이를 공항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검색대와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저선량이기 때문에 시간을 길게 조사하면 해당 부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의료기관에서는 최소 300mA의 엑스레이를 쓴다.
정형외과의사회 임원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골절된 엑스레이 화면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의사, 미국 의사, 아프리카 의사 누구나 '골절'이라는 똑같은 결론을 내린다는 것.
그는 "똑같은 엑스레이를 두고 한의사는 다르게 본다는 말 자체는 과학이 아니라는 의미"라며 "한의협 주장은 심마니에게 한약을 처방토록 하는 것과 같다"라고 평가절하했다.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한 임원도 "저선량 휴대용 엑스레이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구현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돼 있다. 예를 들어 뚱뚱하거나 체격이 좋은 환자는 진단 자체가 힘들 수 있다"라며 "의학은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휴대용 엑스레이는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엑스레이로 단순히 뼈와 근육의 배열 상태만 보는 게 아니라 협착 등 질환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한의협은 엑스레이라는 용어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며 "의료를 정치적으로만 풀어서는 안된다"라고 덧붙였다.
"전 국민 대상 임상시험하겠다는 소리...황당"
대한의사협회는 한의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의협 박종혁 대변인은 "의료계가 요구한 한방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확보라는 건 연구를 통한 입증이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의료인 중 하나라면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해봤으면 한다"라고 토로했다.
재활의학과의사회 임원도 "순서가 잘못됐다"라고 규정하며 "약이라는 것은 급여 등재를 하기 전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 받아야 하는 게 먼저다. 임상시험이라면 환자한테는 동의서를 받고 비용도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앞두고 안정성 확보를 위해 피검사를 급여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순서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따지면 추나요법이나 첩약은 현대 급여화 논의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